-
예술은 죽지 않는다,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베스트 10
유난히 풍작을 이룬 2002년을 돌아보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걸작’과 조우한 기쁨을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예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두 평론가 오언 글라이버만과 리사 슈워츠봄을 이렇듯 흥분하게 만든 영화는 <파 프롬 헤븐>과 <어바웃 슈미트>다. 멜로와 코미디로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이들 작품은 두 평자의 눈에 현대 미국사회를 비춘, 가장 맑은 거울이었다.
글라이버만은 <파 프롬 헤븐>이 “고전영화의 영광을, 금지된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라는, 유니버설한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면서, “50년대의 화려하지만 억압된 교외 풍경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어바웃 슈미트> 역시 “미국의 다양한 매너리즘을 종합한 국민 캐릭터에 대한 코미디”라는 의미에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2]
-
스페인의 악동, 신세기 첫 걸작
<가디언>의 2002년 베스트 10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블러디 선데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막달레나 자매들>,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 <전부 혹은 전무> <스위트 식스틴>의 공통점은 모두 영국영화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고스포드 파크>까지 보태보자. 2002년 영국 영화계는 기세 등등할 이유가 충분했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필름 포 등 주요 프로덕션이 문을 닫는 바람에 영화산업이 침체에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그중에서도 <모번 캘러의 여행>을 2002년 최고의 영국영화로, <아들의 방>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최고의 외국영화로 선정했다. <가디언>의 일요일판인 <옵저버>의 평론가 필립 프렌치의 초이스에서도 <아들의 방>과 <멀홀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3]
-
평론가 7인의 선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4]
-
아시아 영화의 약진타이 영화 <친애하는 당신>에 열광
서구 평론가들이 아시아영화에 깊이 매혹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들이 선정한 2002년의 베스트영화 목록을 살펴보면,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영화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키아로스타미의 <텐>이나 차이 밍량의 <거기 지금 몇시니>가 자주 언급된 것은 서구에서 그들의 지명도로 볼 때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그것도 셀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지아장커의 저예산 독립영화 <임소요>가 심심찮게 상위에 랭크됐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특히 <임소요>는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미개봉 영화 베스트 10에서 1위에 올라, 서구 평단에 지아장커의 지지 기반이 확고해졌음을 방증해 보였다.
무엇보다 놀랍고 반가운 사건은 타이 출신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화려한 등장이다. 2002년 칸영화제 주목할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5]
-
-
<영웅>은 거대하다. 그뿐이다. 중국 대륙이 거대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너머가 보이지 않는 대하(大河)가 있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도 있고, 마오쩌둥이 누구인지 모르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오지도 있다. 우주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지구상의 건축물 만리장성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진시황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영웅은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빤한 방식으로,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기예를 겨루는 검무장면은 <와호장룡>에서, 무명과 영정의 진술에 따라 바뀌는 이야기의 형식은 <라쇼몽>이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진나라 군대가 방패로 진지를 구축하고 화살을 날리는 장면은 <글라디에이터>에서 로마군의 전투를 연상시킨다. <영웅>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장이모만의 것은 없다. 아니 하나 있다. 굳이 진나라 군대를 검은색 일색으로 처리하고, 상황에 따라 인물과 배경 색깔을 바꿔버리는 것. 색깔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1]
-
장이모의 <붉은 수수밭>을 본 건, 아마도 89년일 거다. 상황도 기억난다. 친구들과 교외로 놀러갔다가 거의 밤을 새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피카디리극장으로 갔다. 지금은 감독으로 데뷔한 강문이 웃통을 벗고, 붉은 수수밭 잎에서 우뚝 서 있는 커다란 간판.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붉은 수수밭>은 부족한 잠 때문에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에는 최적의 영화였다. 돈 때문에 나환자에게 시집가는 여인. 그녀를 바라보는, 강인한 근육의 유이. 증오, 간통, 일본군의 만행과 처절한 저항. 도발적인 내용 이상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이미지의 영상. <붉은 수수밭>을 보는 동안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영상이 계속 머릿속에서 불타고 있었다.<붉은 수수밭>의 충격은 다시 나를 극장으로 인도했다. 그 시절만 해도,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느니 반드시 새로운 영화를 본다는 원칙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2]
-
<귀주 이야기> 이후 <인생>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그림자극을 만드는 바보 같은 남자. 역사의 격변기를 그저 착하게만 살아온 남자. 그 보잘것없는 인생을 그려내는 장이모의 솜씨는 의심의 여지없이 거장의 손길이었다. <인생>에서 장이모는 고정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색채로 화면을 버무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그 남자의 인생을 따라만 간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갈 때에도, 부인이 죽어도 그 남자는 ‘인생’이려니 하며 지나간다. <인생>의 장이모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세계를 조작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너무나 평이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준다.국제영화제용 영화 혹은 자신을 위한 영화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첸카이거와 장이모 등 5세대 감독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된 이유는 중국의 인민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국제영화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3]
-
장이모 감독이 말하길산업적인 야심_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주류영화와 예술영화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야 한다. 예전에 예술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영웅>은 상업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다. <영웅>을 계기로 많은 중국인들이 극장을 찾고 있지만 중국인에게 중국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영웅>은 개봉 1주일 만에 1억, 2주일 만에 2억위안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뒀다. 영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쉬리>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처럼 <영웅>이 중국에서 <쉬리> 같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야기_ 이번 영화에선 내가 각본을 직접 썼다. 이전엔 소설을 기초로 쓴 영화가 대부분이다. <영웅>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복수를 하려는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엔 설명이 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복수극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목을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4]
-
그들의 한국영화, 타인의 시선2002년 한국영화의 대외적인 성과, 그 정점에 <취화선>의 칸영화제 수상과 <오아시스>의 베니스영화제 수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계 속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긴 힘들다. 지난 한해 세계 각지로 날아가 현지 관객과 만난 한국영화들은 과연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까. <씨네21>은 일본 <키네마순보>의 평론가가 바라본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 <뉴욕타임스>의 스타 필자 스티븐 홀든이 분석한 <생활의 발견>,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가 들여다본 <취화선>, 영국의 <타임아웃>이 발견한 <고양이를 부탁해>, 중국의 <신전영>이 선택한 <오아시스>를 소개한다. 이방의 영화를 향한 그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영화의 2002년을 반추해본다. - 편집자<키네마순보>가 본 &l
해외평론가들이 바라본 한국영화 6편 [1]
-
<카이에 뒤 시네마>가 본 <취화선>취한 붓은 서정을 휘두르고임권택의 신작 <취화선>(불어 타이틀은 ‘여자에 취해 그림에 취해’이다)은 19세기 한국의 한 화가의 일대기이다. “중요한 것은 선들이 아니라 선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라는 대사는 영화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의미는 관계와 몽타주에서 나온다. 한 장면이 이 관계의 중요성을 가름하게 한다. 여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두루마리 그림을 완성하는 데서 오원은 그림을 시작하는 대단한 영광을 누린다. 그는 그의 스승을 제치게 되는데 이는 당시의 의례에 어긋나는 일이다. 오원은 싹트기 시작한 그의 명성에 의해 자신이 첫 번째 위치, 곧 주제를 점하는 위치에 오른다. 오원의 그림이 그렇듯 영화의 주요 관심은 아카데미에나 적합한 봉건적 후견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만약 오원이 역사에 속해야 한다면 그것은 예술의 역사가 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의 능력이 출중함에도 그것을 자랑하기보다는 작품을
해외평론가들이 바라본 한국영화 6편 [2]
-
<신전영>이 본 <오아시스>살아 있으므로 사랑하였네라2002년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은 한국영화를 들자면 적어도 두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은 이창동의 〈오아시스〉(綠洲)이고, 다른 한편은 임권택의 〈취화선〉(醉畵仙)이다. 양 대 유럽 영화제에서 그들은 열렬한 박수 세례를 받았다. 이를 지켜본 수많은 중국영화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의 심정은 아마도 매우 복잡할 것이다. 우리는 21세기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영화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추세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고 거울로 삼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현존하는 문제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현재 중국영화의 상황은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2002년 홍콩영화는 유사 이래 가장 깊은 계곡으로 빠져들었고, 흥행수입은 지난해와 비교하여 14% 하락했다. 대만영화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고, 중국영화는 지난해와 비교하여 활기를
해외평론가들이 바라본 한국영화 6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