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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여자들>, 일본의 또다른 행방불명요시다 요시시게의 13번째 영화이자 15년 만의 신작 <거울 속의 여자들>(鏡の女たち, 공식비경쟁 초대작) 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기다린 영화이다.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60년대 일본영화의 전투의 계절에 등장한 이 감독의 과격하기 짝이 없는 <에로스+학살>(1970)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한편이다(이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의 바로 그 이야기를 마치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만든 두편의 영화 <인간의 약속>(1986)과 <폭풍의 언덕>(1988)은 한편은 너무 진지해서 따분하고 다른 한편은 너무 아름다워서 지루한 영화이다. 요시다의 영화는 종종 요기(妖氣)에 넘쳐난다. 또는 요시다는 그것이 영화의 매혹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역사를 다루거나, 문학소설을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 세 번째 편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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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작가로서 임권택이 걸어온 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2차대전 이래로 제3세계 국가에서 예술영화가 개척되온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식민시대 이전 자국의 고유 문화를 영화에 끌어오는 것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박정희 정권이 집권했던 1960년대와 70년대 검열시대에 임권택은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기술자에 가깝게 상업적 영화들만을 만들었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이 물러난 뒤 1980년대 ‘민중’시대가 도래했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가 50이 넘어버린 뒤여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불었던 ‘작은영화운동’에 가담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임권택 감독이 택한 길이 바로 현대 한국을 식민시대 이전의 민족문화를 통해 고찰하는 것이었다.임권택의 영화세계는 ‘결핍’과 ‘복원’이라는 모티브로 설명된다. 그는 식민시대 이전 한국의 고유문화를 탐구함으로써
[해외평단의 임권택 읽기]데이빗 제임스의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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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러브>, 알차구나, 폴 토머스 앤더슨!폴 토머스 앤더슨은 2년 전 베를린에서 <매그놀리아>로 찾아왔을 때 다음 영화는 아주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설마, 라고 그냥 웃었다. 왜냐하면 <부기 나이트>를 만들고 난 다음에도 그런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칸에 온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 경쟁부문)는 정말 짧고 간결하다. 91분 동안 주인공 브라이언 이건(애덤 샌들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랑을 찾아 말 그대로 일직선으로 달려간다. 일곱 자매에 둘러싸여 그녀들의 간섭과 잔소리와 과잉보호 속에 브라이언 이건은 연애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 그 자신도 어찌할 줄을 몰라 그저 속만 태우면서 고민 끝에 폰섹스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불러준 신용카드 번호가 문제를 일으키고, ‘삐끼’(!)들이 찾아와 괴롭힌다. 브라이언은 괴로울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에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 세 번째 편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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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권택의 영화가 종종 그 자신의 인생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임권택 자신의 얘기에 따르면,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후, 72년까지 4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73년 <잡초>를 자신이 직접 기획해서 만들기까지는 감독으로서의 자각 같은 것은 없었으며 프로듀서의 주문에 따라 갖가지 상업영화를 만들어왔을 따름이다. 물론 <잡초> 이전의 영화에서도 그의 고유한 세계를 찾아낼 수 있지만.그의 82년작 <만다라>는 나와 임권택의 첫 만남을 가져온 영화이자, 내면적인 고뇌에서 발하는 빛을 포착하려는 새로운 흐름을 한국영화에 추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렇게 형이상학적 주제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무거운 의미를 띠는 영상이나 몽타주를 배제하면서 지극히 자연스런 연기와 화면으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임권택이
[해외평단의 임권택 읽기]사토 다다오의 ‘한국 영화와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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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서 계속) 그러니까 영화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하면 일곱편, 그리고 시간이 잘 안 맞으면 네편의 영화를 본 다음 칸의 해변가를 따라 (요즘 내가 심취한) 마누 차오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어온다. 나는 김홍준 선배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영화제가 있지. 칸와 안(non)-칸영화제.”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곳은 영화를 위해서, (앙드레 바쟁의 말을 빌려) 불순하게도 끼어들어간 현실을 이미지 속에서 보존하고 정회시키기 위해 싸우는 시네아스트들을 지지하면서, 작가의 새로운 명단을 매년 발표하면서, 영화감독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곳이다. 정말 칸에서는 영화평론가들이나 영화기자나 프로듀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오직 창조하는 자들만이 그 위대한 만신전에 오를 수 있다.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칸을 절반만 본 것이다. 그 크로와제트의 뒤를 돌아가면 끝갈 데 없이 마켓이 펼쳐져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 세 번째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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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반응은 어땠나.폐막식 뒤 열린 폐막 만찬 자리에서 우리 테이블에 심사위원 중 네명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정신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데, 그중 한명은 “칸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아직 그 감동과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하더라. 심사위원장이었던 데이비드 린치는 날더러 완벽주의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 고마운 말들이다.-단상 위에 올랐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뭐 그렇다기보다는 뭣인가 받았다는 거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살았는데, 실제로 받았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는 정도지 뛸 듯이 기쁘거나 이렇지는 않았다. 좋은 영화제에서 상 탔으면 하는 것이 오래 전에는 내 개인의 욕망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쌓이다보니 나에 대한 기대가 쌓여갔다. 결국 내 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주변의 성과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커져 멍에를 쓴 게 돼버렸다. 특히 이번 <취화선>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로부터 엄청난 도움이 있었다. 그림, 서예, 의상,
[해외평단의 임권택 읽기]임권택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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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회 칸영화제가 열이틀 동안의 여정을 접고, 지난 5월26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유난히 화려하고 알찬 영화들이 매일 밤 그 위용을 뽐냈다. 거장감독들과 스타배우들이 즈려 밟은 레드카펫은, 충심으로 그들을 경애하는 시네필들에겐 매직카펫에 다름 아니었다. 경연대회의 긴장감보다는 축제의 흥분으로 들떴던 올 칸영화제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 황금종려상을 안기고, 로만 폴란스키의 거장 귀환을 축하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프랑스 대선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 막을 올린 올 칸영화제의 화두는 역시 ‘정치와 사회’였다. 그것은 여전히 영화가 세상과 소통하려 하고 있다는 희망. 다시 쓰는 현대사, 다른 각도에서 보는 오늘의 정세 등을, 올해 칸을 찾은 감독들은 즐겨 이야기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장과 신예를 불문하고, 미학적인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는 반가운 증거와도 만날 수 있었다. 거장들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신예들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 보인, 경이로운 순간들.
칸영화제 5월26일 폐막, 황금종려상에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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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은 판소리와 극영화의 양식을 접목한 것이다. 판소리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악극에서 이야기와 음악과 리듬을 모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서구 관객에겐 놀라운 시도로 보인다. 나는 춘향의 절개라는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로 엮어나가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영화가 취하고 있는 형식 자체가 더 흥미로웠다고 생각한다. 즉 판소리 공연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면서 그 텍스트에 대한 영상을 극영화로 보여준다는 점 말이다. 다시 말해서 판소리 공연을 구경하는 관객의 경우 소리꾼과 반주자밖에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단어들이 정확하게 환기하는 영상들을 보다가 갑자기 이미지가 뚝 끊기면서 판소리 공연을 보는 관객의 텍스트로 돌아가게 된다. 텍스트와 영상 사이의 반복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임권택 감독의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미장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영상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판소리로 자주 돌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의 흐름을
[해외평단의 임권택 읽기]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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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 출범 이후 제작된 영화들2000년_______ 킬리만자로(7만8천명)_______ 시월애(25만3100명)2001년_______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8만2400명)_______ 인디안 썸머(39만4032명)_______ 썸머타임(8만299명)_______ 무사(87만3600명)_______ 봄날은 간다(38만3300명)_______ 화산고(61만3300명)2002년_______ 정글쥬스(약 29만명)_______ 결혼은, 미친 짓이다(36만3295명·5월19일 현재)_______ 로드무비(개봉예정)_______ 헬로 피구(개봉예정)_______ 밤을 걸고(개봉예정)_______ *괄호 안은 서울관객 수튜브엔터테인먼트 출범 이후 투자·제작·수입·배급된 영화들2000년_______ 가위(33만2천명)_______ 컷 런스 딥(4440명)_______ 포스트맨 블루스(2만4천명)_______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4만3천명)200
싸이더스, 튜브 출범이후 제작된 영화와 차기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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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는 늘 움직인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최근에도 충무로의 대치구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만한 거대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 새로운 합종연횡의 중앙에는 싸이더스와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있다. 한국영화계의 양대 군단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도모하던 두 회사는 각기 새로운 행선지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싸이더스는 시네마서비스를 이탈해 ‘유령’호를 타고 반대편에 있는 CJ쪽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튜브는 독자적인 판을 짜기 위해 ‘로스트 메모리즈’를 찾아 다시금 배급 전선을 향해 길을 떠났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 그리고 향후 충무로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편집자올해 초만 해도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음반, 매니지먼트, 게임 등까지 챙기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던 차 대표의 말수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었다. 그 시점은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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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싸이더스, 어디로 가나? 싸이더스의 경우, 오히려 플레너스의 출범과 싸이더스의 분할을 계기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차승재 대표가 박병무 플레너스 대표와 담판을 지어, 회사의 지분율 변경과 자유로운 투자처 선택 등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가 <지구를 지켜라> 등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플레너스의 출범 발표와 거의 동시에 전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차승재 대표는 지난해부터 제기됐던 “싸이더스가 로커스홀딩스 안에서 밀리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극단적인 경우엔 아예 집을 버리고 뛰쳐나오겠다”는 계획을 내비쳐왔다. 업계는 이같은 차 대표의 배수진 승부에 플레너스가 일단 양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싸이더스는 향후 배급 파트너에 관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싸이더스가 계획중인 작품의 수가 워낙 많고, 이중에는 제작비 규모가 상당한 프로젝트도 다수인 탓에 중소 규모의 배급사와의 제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볼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