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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명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가끔 고전 게임을 꺼내 플레이한다. 잘 만든 게임은 몇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도 좋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 내겐 중학생 시절 감동과 눈물을 안겼던 <창세기전2>가 그런 게임이다. 며칠 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와 할리퀸을 보고 문득 <창세기전2>의 흑태자가 생각났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란 무엇일까. 그게 순전히 캐릭터의 힘일까. 보석 같은 캐릭터들을 매번 학대하는 DC에 이 글을 부친다.
이제 슈퍼히어로영화가 지겹다. 정확히는 슈퍼히어로‘들’이 쇼케이스처럼 전시되는 영화에 지쳤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슬프게도 예고편으로 충분한 영화였다. 예고편만큼 착실하게 캐릭터를 소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정작 본편에 와선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방치해버린 인상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최근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들은
[송경원의 덕통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생략된 체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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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실질적인 무력(武力)을 필요로 한다. 첨단의 무기를 재래식 조직인 군대가 운용한다는 사실이 골칫거리다. 유사시 전쟁에 나갈 병력은 실제 전투력보다는 평상시 산출 가능한 수치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너무 많은 인간은 통제하기 어렵다. 권력은 늘 의심이 많고, 대중의 절대적 믿음을 갈구하는 반면 절대로 그들이 대중을 믿지는 않는다. 소수의 엘리트로 구성된 권력은 수하 역시 소수 정예로 두길 원한다. 권력에겐 슈퍼 군인, 인간병기 혹은 암살자가 필요하다. 권력은 언제나 인간을 수단으로, 로봇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국가와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조국의 부름(Call of Duty)을 받아 목숨을 걸고 의무를 다하는 숭고한 행위를 삐뚤어진 노예근성으로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권력이 말하는 국가의 안보적 위기가 정말로 국민의 위기인지 아니면 그들 권력의 위기인지 애매한 경우다. 권력이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위협에 대해, 극한으로 도구화된 인간 몇몇이 명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수단으로서의 인간과 속죄하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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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다랭이(多+language+異) 마을에 한국, 브라질, 프랑스, 타이, 러시아, 베네수엘라, 중국에서 온 7명의 남녀가 모인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놀랍게도 오직 모국어만 사용해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tvN의 <바벨250>은 7개 다른 나라에서 온 남녀가 모국어로만 생활하고 소통하는,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으로 담아낸다. ‘바벨’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바벨탑의 그 바벨이다. 높은 탑을 쌓아올려 하늘의 권위에 닿으려 했던 인간에게 분노한 신이 그들에게 각기 다른 언어를 주어 오해와 불신을 쌓도록 한 의미심장한 이야기. 이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7개국의 젊은이들에게 소통을 빼앗은 것 만으로 모자라 불통 상태에서 공통의 미션을 실현시키게 한다.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새로운 언어인 ‘바벨어’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브라질의 삼바 챔피언이자 망게이라 음악학교의 리더, 러시아의 SNS 스타, 미스 베네수엘라, 타이의 1
[김호상의 TVIEW] 바벨 마을에 모인 일곱 남녀들 <바벨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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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터널> 무너지는건 터널 뿐만이 아니다
[정훈이 만화] <터널> 무너지는건 터널 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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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외국 여행, 하얀 돌고래 벨루가를 보러 갔다. 한국에는 벨루가가 없던 시절이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했던가. 한때 북극 지방에서 사람이나 개의 식량으로 쓰였다던 벨루가는 현대에 이르러 승리를 쟁취, 그거 있는 수족관은 어깨에 힘 좀 준다는 귀한 몸이 되었다. 얼마나 귀한가 하면… 일을 안 한다.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들이 전부 하는 일 없이 놀기는 하지, 무슨 일을 하겠어. 하지만 벨루가는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류, 같은 포유류인 돌고래랑 바다표범이랑 해마는 다들 뼈 빠지게 일해서 정어리 얻어먹는다고. 근데 정어리는 소금 뿌려 굽기만 해도 맛있고, 올리브유랑 고추에 절이면 더욱 맛있고, 아아, 정어리….
어쨌든 초등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제쳐가면서 관람석 앞줄을 차지하고 만난 벨루가, 못쓰겠어. 다른 애들은 고리 넘고 앞구르기하고 공부해서 숫자도 세는데 이 녀석은 헤엄만 치더라고. 근데 박수는 제일 많이 받아, 따라서 정어리도 제일 많이 받아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친구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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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창간호를 1억원에 삽니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오래전 1989년 <로드쇼> 4월호 창간호를 2권 샀었더랬다. 한권은 소장용, 한권은 자유롭게 오려서 코팅 책받침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표지 모델이 소피 마르소였는데, 기억에 남는 기사는 배우 박중훈과 함께 이른바 ‘스크린 카페’를 탐방했던 기사, ‘데이트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홍콩 배우 주윤발과 한국 배우 이혜영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영화월간지 <스크린>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경쟁지 <로드쇼>가 그렇게 등장했다. 1억원 이벤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가 만든 창간호를 되돌려 삽니다. 1989년 4월호 창간호는 10년이 지난 뒤에는 1,000,000원이 됩니다. 가급적 파손을 피해주시고 10년 동안 보관하시면 횡재를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당첨자는 경찰관 입회 아래 공정하게 100명을 추첨하여 각각 1,000,000원씩을 드린다”고 했다. 1억원을 다 준다는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영화잡지 생명연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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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씩 웃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로 음악 얘기를 많이 했는데, 록/메탈 신봉자였던 나와는 반대로 포크적인 음악에 주로 반응했던 게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고, 그 조용했던 사람이 뮤지션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아톰북’이라는 밴드를 했고, 이후에 솔로로 나와서는 ‘빅베이비드라이버’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때부터였다. 세상이 그의 음악에 서서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에 그의 음악이 쓰였고, 평단의 호평도 이어졌다. 특히 2014년에 발매된 《A Story of a Boring Monkey and a Baby Girl》은 정말이지 좋은 소리를 담고 있었다. 과한 구석이나 모자람 하나 없이 포크와 컨트리를 따스하고 포근하게 오갔다. 그런 그가 동료와 함께 막 밴드를 결성해 또 다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의 《bbdTRIO
[마감인간의 music] 편곡의 묘 -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 《bbd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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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있다는 ‘산자루’라는 조각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각각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으로, 그 의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세법의 근간을 이루는 “말하지 마라, 듣지 마라, 보지 마라”라고 들었다. 이 조각이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비례물언, 비례물청, 비례물시에서 유래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마라”라는 뜻이었다.
그 후 제법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게 되었고,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스스로 귀와 입을 막아버리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짧게나마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진다. 내가 편하고 볼 일이라는 가짜 믿음을 유지하는 동안, 꽤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부서지고 깨졌다. 그리고 내가 외면하는 동안, 적어도 내가 볼 수 있었던,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보고, 듣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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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물었다. 난 이제 겨우 서른일곱살이야. 인생의 영화라니, 좀 가혹하지 않나. 영화를 즐겨보진 않지만 앞으로 만날 영화가 족히 100편은 될 것이다. 친구가 대답했다. 아홉살에게도 인생이 있는걸. 그렇지, 그건. 두꺼운 책 하나가 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군데군데 해진 곳도 있고, 몇몇 군데는 귀퉁이가 접히기도 한 그런. 꽤나 멋진걸. 그런 생각을 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떤 당위도, 논리적 연계도 없이 떠올랐지만 분명, ‘그 때문’이었다.
집요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찾아드는, 회상(回想)이다. 나는 잔디밭, 이라기보다는 잡초들 위에 누워 있고, 살포시 잠이 들었나. 내 생일이었다. 왜 혼자 누워 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멀리 친구들이 놀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특별한 이들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다. 그 애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
[내 인생의 영화] 유희경의 <그레이트 뷰티> 일생을 서성이게 만들 위대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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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테네를 배경으로 한 <제이슨 본>의 첫 액션 세트피스는, 구제금융 찬반을 둘러싼 그리스 국민들의 시위와 뒤섞여 있다. 본은 의도치 않게 진압경찰과 충돌하고 물대포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며 전진한다. 군중의 깃발에 가려져 CIA 시야를 간간이 벗어나기도 한다. 세팀의 적을 차례로 격퇴하고 따돌리는 이 시퀀스는 <본 얼티메이텀>의 워털루역 장면과 탕헤르 추격전을 교배한 듯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본 시리즈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을 처음 스카우트하게 만든 북아일랜드 시위 참사를 그린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엔터테인먼트 판본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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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올여름 할리우드발 대형 속편 <도리를 찾아서>와 <제이슨 본> 사이에는 뜻밖의 평행이론이 성립한다. 두 영화 모두 전편이 세워놓은 기준치가 높고, 스튜디오 또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이 큰 기대를 조성했다. 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자필반(去者必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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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차면 기울고 활짝 핀 꽃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땅에 떨어진다. 1950년대와 60년대 일본 만화의 대명사와 같았던 데즈카 오사무도 7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드넓은 자기 집 마당에 건물을 보란 듯이 세우고 제2의 월트 디즈니를 꿈꿨던 애니메이션 사업을 접어야 했고, 무시 프로덕션도 부도를 맞아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만화잡지의 연재도 끊어졌다. 데즈카 오사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자신의 어시스턴트들에게 <소년 매거진>에 연재 중이던 가지와라 잇키 원작, 가와사키 노보루 만화의 <거인의 별>을 펼쳐 보이며 이런 만화가 어떻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던 일은 이 시기의 유명한 일화다. 60년대 중반부터 반(反)데즈카 오사무를 외치는 만화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만화를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와 구별해 극화라 이름 붙였다. <생존게임>과 <고르고 13>으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오가 그 선두 주자였다. 50년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고 자란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처절한 고통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