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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카데미는 왜 ‘헤어질 결심’과 ‘놉’을 외면했을까?
조현나 2023-03-09

무시할 결심

지난 1월24일,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 명단이 발표됐다. 매해 그렇듯 발표 결과를 두고 후보에 오른 작품과 오르지 못한 작품에 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각각 11개 부문,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보도되며 크게 주목받았다. 반면 <> <더 우먼 킹> <생토메르> 등의 흑인영화가 감독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의 후보에 오르지 못한 데 대해 <더 우먼 킹>의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 감독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력 후보였던 <헤어질 결심>과 <>이 어느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 또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미국 현지에서는 “아카데미가 박찬욱 감독을 무시한 결과”(<버라이어티>), “<헤어질 결심>을 무시하기로 한 아카데미의 결심은 범죄”(<매셔블>)와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의 경우도 “<>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서 제외된 건 마치 극중 등장하는 할리우드의 노동자 차별 문제가 반영된 것만 같다”(<스크린랜트>)는 의견이 더해졌다.

<헤어질 결심>

<기생충>은 되고 <헤어질 결심>은 안된다?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작품들의 특성을 경유해 올해 후보 명단에서 제외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선호하는 영화의 유형은 꽤 확실한데 가령 “삶의 교훈을 보여주는 드라마 장르나 무미건조한 제국주의 서사”(<콜라이더>), 혹은 “시대물 또는 명백히 영화 제작에 관한 영화라는 두 가지 유형”(<인디와이어>)들이다. 올해 후보작 중 할리우드 황금기를 다룬 시대물인 <바빌론>과 할리우드의 대표 프랜차이즈 영화 <탑건: 매버릭>도 이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선호도로 인해 “매끄럽고 세련된 장르영화는 그동안 간과”(<콜라이더>)돼왔는데 <헤어질 결심>은 이 ‘간과된 장르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그간 해외에서 주목한 박찬욱의 영화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로맨스가 가미된 수사 장르라는 점에서다. 히치콕 감독의 <이창>과 <현기증>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거론될 만큼 전통적인 장르영화의 기법을 차용했다는 특성 또한 눈에 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계보를 타고 올라갔을 때, <현기증> <이창> 역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히치콕에게 영향을 받은 브라이언 드 팔마, 폴 버호벤과 같은 감독들도 아카데미로부터 외면받아왔다. 아카데미는 에로티시즘은 물론이고 위험한 주제에 관해서도 다룬 적이 없다”(<콜라이더>). 장르영화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더불어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에 대한 아카데미의 상반된 반응을 견주어볼 때, 아카데미가 한국영화의 어떤 면에 주목하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 역시 아카데미가 호러 장르의 성과를 간과하는 경향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장편 <겟 아웃>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뒤 조던 필 감독은 스릴러·공포 장르를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문제와 꾸준히 엮어왔다. 그러나 차기작인 <어스> <> 모두 결과적으로 아카데미로부터 외면당했다. “괴생명체가 등장하고 스펙터클이 가미됐다는 측면에서 <>은 <죠스> <E.T.> 등과 비견된다. <죠스>와 <E.T.>도 결국 아카데미 기술 부문에서만 수상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최소한 작품상 후보로는 거론됐었다.”(<인디와이어>) <>의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이 아이맥스 필름과 적외선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한 독창적인 촬영 방식을 고안했고 작품에서 고유의 시각효과를 효과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은 “최소한 음향, 촬영 부문에서라도 노미네이트됐어야 했다”(<인디와이어>)는 아쉬움이 다수 제기됐다.

<놉>

여전한 그들만의 리그

1990~2000년대에는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작품의 유형이 비교적 명확했다. 작품성이 보장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거나 <쉰들러 리스트> <타이타닉>과 같이 역사적 비극을 다룬 작품, 요컨대 “아트하우스영화와 멀티플렉스 엔터테인먼트 사이에 위치한 영화”()들이 주로 그러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 2010년대 후반 <블랙 팬서> <조커>가 오스카상을 거머쥔 것으로 비춰볼 때 상업영화에 대한 수용력이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올해 <아바타: 물의 길> <엘비스> <탑건: 매버릭>과 같은 블록버스터영화가 선택된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문라이트>와 <코다>처럼 소수자들의 서사를 다룬 인디영화에도 꾸준히 반응하는 추세다. 2023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TAR 타르>와 <우먼 토킹>에도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기생충>과 <미나리>에 이어 아시아계 가족을 중심으로 서사를 펼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여러 부문에서 거론된 것도 눈여겨볼 결과다.

영화산업의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목소리를 반영해 보다 여러 층위에 놓인 영화들을 포괄하려 한 시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올해의 노미네이트 결과로 판단하건대, 아카데미의 변화의 시도가 고르게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감독상 부문에선 스티븐 스틸버그(<파벨만스>), 마틴 맥도나(<이니셰린의 밴시>),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토드 필드(<TAR 타르>), 루벤 외스틀룬드(<슬픔의 삼각형>) 등 오직 남자감독들만이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사라 폴리 감독이 연출한 <우먼 토킹>과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색을 담당한 <리빙>이 각각 작품상, 각색상에 거론됐지만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에서 지목한 여성, 유색인종 창작자의 수는 현저히 적다. 요컨대 다양성을 포괄하려 시도하고 있으나 아카데미의 장르와 인종, 배우의 수용 측면에선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만의 리그’로 명명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종, 성별, 서사, 주제, 장르 측면에서 더욱 시야를 넓혀야 하지 않을까.

<더 우먼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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