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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편영화에 희망을! ‘아트플러스의 선택 2004 하나더+’
오정연 2004-08-27

‘아트플러스의 선택 2004 하나 더+’ <썬데이@서울>등 13편, 전국 릴레이 상영

와이드 릴리즈와 천만관객 시대의 그늘에서 “볼 만한 새 영화, 새로운 영화가 없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 전하는 희소식. 오는 8월27일부터 10월7일까지 전국의 아트플러스 체인 8개 극장에서 13편의 새로운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독립장편영화들을 두 섹션으로 나누어 섹션마다 1주일씩 각각의 극장에서 릴레이 상영하는 ‘아트플러스의 선택 2004 하나 더+’는 아트플러스가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행사. 그간 독립‘장편’영화는, 그나마 각종 영화제를 통해서 간간이 소개될 수 있었던 단편영화에 비해 일반관객에게 선보일 기회가 더욱 제한돼 있었던 분야. 최근 디지털영화의 보급으로 예전보다 많은 수의 장편들이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막상 이들을 수용할 만한 창구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올 3월 다큐멘터리 <송환>을 배급하면서 저예산, 대안영화 배급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른 아트플러스 네트워크는, 하반기부터 정기적으로 장편독립영화를 배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번 릴레이 시사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은 이후 아트플러스의 배급망을 통해 좀더 많은 관객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13편의 영화들은 좀처럼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다양한 면모를 자랑한다. 황규덕(<철수, 영희>), 이두용(<애>), 장길수(<초승달과 밤배>) 등 충무로에서 활동한 지 10년도 넘는 중견, 노장감독부터 이제 첫 장편을 완성한 조범구(<양아치어조>), 노동석(<마이 제너레이션>), 신재인(<신성일의 행방불명>) 등 단편영화계의 스타감독,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오명훈(<썬데이@서울>), 황철민(<프락치>) 감독, 그리고 조선족 감독으로 눈길을 끌었던 장률(<당시>)까지 연출자들의 이력과 출신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대담한 실험부터 서정적인 우화까지 각각의 영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동시대를 고민하면서 소외된 이들에게 향해 있는 이들의 시선은 13편의 영화를 관통할 만한 키워드다. 충무로 경력이 없는 감독의 작품들 중, 그간 <씨네21> 지면에서 미처 소개하지 않았던 다섯 작품들을 소개한다.

아트플러스의 선택 2004 하나 더 +

주최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후원 영화진흥위원회

상영작 <선데이 서울> 등 총 13편의 한국영화

상영관 아트플러스 전국 8개관

일정 8월27일(금) ~ 10월7일(목) (전국 릴레이 상영)

문의 동숭아트센터 영상사업팀 02-766-3390 내선 552

<마이 제너레이션> 노동석 l 2004년 l 35mm l 85분 l 출연 김병석, 유재경

<초롱과 나> <나무들이 봤어>를 통해 동심과 세상이 만나는 섬뜩한 순간을 포착했던 노동석 감독. 이번에는 평범하고 특별한 커플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무심하게 그려낸다. 웨딩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병석과 사설 대출업체에 경리로 취직하려 하는 재경. 병석은 형이 남긴 빚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재경은 ‘우울하다’는 이유로 첫 출근날 해고당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이 커플이 당장 모텔비를 포함한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병석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성인 비디오테이프를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고, 재경은 피라미드형 인터넷 쇼핑몰에 가입했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인맥마저 ‘절단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세상에 대해 쉽게 분노하거나 타협하지 않은 채 나름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재경은 〈1호선>에서 위태롭게 플랫폼을 서성이던 바로 그 얼굴이며, 주연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은 감독의 주변에서 세심하게 캐스팅되고 배치된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했다. 한편 병석의 작은 캠코더를 통해 ‘우리 세대’를 근심하던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하루일과를 묻는 병석에게, 재경은 대답한다. “그거 치우면 얘기해줄게.” 그녀의 볼에 한줄기 눈물이 흐르는 그 순간, 카메라를 치우고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감독의 작은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프락치> 황철민 l 2004년 l DV6mm l 100분 l 출연 양영조, 추헌엽

나른한 열기가 가시지 않는, 에어컨도 없는 여관방에 두 남자가 장기 투숙 중이다. 무릇 여관방이란 그런 것이어서 밤이면 신음소리로 잠을 설치고, 낮이면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퀴벌레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간간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뉴스소리뿐이다. 젊은 남자는 정체가 드러난 프락치이고, 좀더 나이든 다른 남자는 그를 감시 중인 기관원. 두 사람이 무료를 이기기 위해 택한 방법은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죄와 벌>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둘의 유희는 사이코 드라마와 부조리극으로 변해가고, 이제 그들 자신마저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배경도 설명해주지 않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급변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각종 영화적 기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 다큐멘터리 <옥천전투>를 비롯하여 <삶은 달걀> <그녀의 핸드폰> <푸른하늘 은하수> 등을 통해 실험영화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황철민 감독의 최근작이다.

<썬데이@서울> 오명훈 l 2004년 l 35mm l 72분 l 출연 서충식, 서정연

80년대를 풍미했던 잡지 <썬데이 서울>. 선정성과 일방적 시각을 꾸준히 견지했던 타블로이드 잡지의 한구석을 차지하던 소식들은, 믿을 수 없지만 엄연히 동시대인들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오명훈 감독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이러한 조각 단신들을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의 플롯으로 완성했다. 여관방을 비추는 CCTV 화면이 한가득 모자이크되는 첫 장면 이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 할 만한 이들의 일상이 촘촘하게 배치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정환은 자신이 성인이 되는 날 콜걸 수희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주부 명주는 수영장에서 만난 자유분방한 신애를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대학교수 동천은 자신을 외면하는 예전 학생 은영에게 버림받고도 끈적거리는 인연의 끈을 놓을 줄 모르며, 유부남 형사 지욱의 집에서 한낮의 데이트를 즐기던 수희는 갑자기 들이닥친 지욱의 처를 피해 아파트 파이프에 매달리게 된다. 요지경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때때로 대담한 비주얼 혹은 내공있는 연출력을 통해 전달되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두개의 여관방 장면은 여러모로 압권이라 할 만하다. 원신 원컷으로 촬영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여관방 한구석에서 두 인물의 남루한 성행위를 응시하던 CCTV화면이 클로즈업되지만 남는 것은 결국 조각조각 분절된 디지털 화소들뿐이다. 2004년 로카르노영화제 초청작.

<양아치어조> 조범구 l 2004년 l DV6mm l 140분 l 출연 여민구, 김종태, 최석준, 양은용

건달, 깡패 등과 혼용되어 사용되는 ‘양아치’는, 본래 거지를 뜻하는 동냥아치의 줄임말이었다. <친구>에서는 남자의 의리를 아는 사람들을 뜻하는 건달에 비해, 돈만 밝히고 구린 짓 많이 하는 놈들로 분류되는 등 유독 삼류인생의 느낌이 강한 단어이기도 하다. <장마> <어떤 여행의 기록>의 조범구 감독은 변두리 양아치의 인생을 때로 조용히 응시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익수가 어머니의 보험금으로 친구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유독 많은 수의 등장인물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고등학생 익수와 3명의 친구들, 익수의 원룸에 기거하는 현진과 그녀의 술집 동료 3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여기에 각종 채무관계로 얽혀 있는 인물들까지 합치면 비중있는 캐릭터는 10명을 훌쩍 넘어선다. 단출한 인물배치를 통해 깊이있는 울림을 주었던 감독은 이제 각각의 캐릭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직조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 자신이 초래한 것도 아닌 빚에 어깨를 짓눌린 이들은 모두 동네 어귀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어조’를 구사하는 이들은 야구 방망이에 사시미를 들고도 선뜻 속시원한 싸움 한판 ‘뜨지’ 못하는 소심한 인생이다. 말끝마다 ‘씨발’과 ‘새끼’를 달고 살고, 압구정이 어딘지도 모르는 이들, 그러나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신성일의 행방불명> 신재인 l 2004년 l DV6mm l 100분 l 출연 조현식, 예수정

신재인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단언하건대 오직 그의 머리를 통해서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인물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울 수 있게 된 소년(<재능있는 소년>), 어느 순간 입에서 진실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남자(<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등. 이번에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먹는 것을 치욕적인 일이라고 가르치는 고아원 원장 밑에서 아무리 금식을 해도 빠지지 않는 자신의 살을 원망하는 소년 신성일이 주인공이다. 넘치는 재능만큼이나 행보를 종잡을 수 없었던 그가 디지털장편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심화, 확장시켰다. 여전히 성경 구절을 흉내낸 잠언들이 넘쳐나고, 현실과 환상, 실제와 비유를 종횡무진 오가는 영화 속에서 관객의 길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작을 통해 새로운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를 음미했던 관객에게는 ‘나름대로’ 익숙한 혼란이 아닐까. 성일이 과연 그 숨막히는 금기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인지 호기심이 더해진다.

오정연 miaw@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