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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화가 사는 법 [2]
이영진 2005-11-22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올해 하이퍼텍 나다는 영화제 상영작을 제외하고, 다큐멘터리를 무려 4편이나 단독 개봉했다. 류미례 감독의 <엄마>를 비롯해 대니얼 고든 감독의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 그리고 페이크다큐멘터리인 <목두기 비디오>까지. 12월에는 다큐 <꿈꾸는 카메라>까지 개봉 대기 중이다. 2003년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2004년 <송환>의 장기상영과 흥행에서 얻은 자신감이 올 한해 ‘다큐 인 나다’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 다큐 관객을 늘려보겠다”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큐에 대한 집중적인 애정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와도 관련있다. 동숭의 정유정씨는 “내부적으로 감독전에 대한 회의가 있다”고 말한다. 이미 한 차례씩 선보인 적 있는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묶어내는 것만으로는 관객을 잡아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의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2주 동안 상영됐지만 2500명 정도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불과했고, 동숭은 지난해 말 장 뤽 고다르 이후 모든 감독전이 썩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다.

동숭은 작은 영화를 배급·상영하는 입장에서 이제는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새로운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유정씨는 “아트플러스에 대한 비판이 많긴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관이 없어서 영화를 못 트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면서 예술영화를 찾는 관객이 줄었다는 탄식보다는 새로운 식단을 차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숭은 다큐멘터리 상영을 통해 만족할 만한 수익을 거두진 못했지만 다큐에 대한 애정을 중단하지 않을 예정이다. 제작 중인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크로스 더 라인>을 선구매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유정씨는 “선구매를 통해 판권 비용을 낮출 경우, 이후 개봉 때 부담을 줄일 수도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한다. P&A 비용을 줄였다면, 방법 또한 새롭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덩치 큰 영화들이 하는 마케팅을 몇 십분의 일 수준으로 축소 진행하는 것으로는 관객의 발걸음을 잡아끌기 어렵다는 게 동숭이 내놓은 숙제다.

2005년 성적표/ <마더>(2610명), <마지막 프로포즈>(1만1000명), <목두기 비디오>(984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2500명), <스파이더>(1430명), <실비아>(4516명), <아무도 모른다>(3만4371명), <어떤 나라>(5411명), <천리마 축구단>(1579명)

2006년 라인업/ 선댄스영화제 화제작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비롯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등이 함께 만든 <티켓>,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아임 고잉 홈> 등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밖에 아녜스 바르다, 난니 모레티,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이 예정되어 있고, 두 번째 ‘다큐 인 나다’ 상영작을 프로그래밍 중이다. 지난해 <마이 제너레이션>과 올해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한국영화들의 기획 개봉도 추진하고 있다.

“30∼40%는 줄어든 것 같다.” 올해 인사동 초입의 옛 허리우드극장에 상영관을 마련한 필름포럼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기획전을 열 때보다 관객 수가 떨어졌다. 임재철 이모션픽쳐스 대표는 그러나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아트선재센터에 몰려든 관객은 “어차피 허수 관객이었다”는 것이다. 불리한 입지로 인해 관객 수가 급감했지만,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감독의 지명보다는 미지의 거장을 발굴하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술영화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중반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지 않나?” 단성사와 피카디리가 재개관하면서 종로통에 많은 극장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필름포럼으로서는 “멀티플렉스에서 걸지 않는” 영화들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일부 개봉작들을 받아서 상영하는 것과 관련해, 임재철 대표는 “단관 개봉을 원하는 예술영화나 자체 프로그램으로 라인업을 채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재 작품 수로는 2개관을 채우기가 버겁다”고 토로한다. 특히 근처 시네코아에서 상영되는 작은 영화를 함께 걸 경우 외려 관객몰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름포럼으로서는 작품 수급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을 직접 제작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아트플러스에 속해 있는 필름포럼으로서는 입지 때문에 영진위가 인정하는 예술영화조차도 마음껏 걸 수 없기 때문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1만3천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면서 기획전과 수입작 <불안> 등의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한 필름포럼으로서는 내년에는 많으면 3편 정도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다. <NHK>의 투자와 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내 청춘에게 고함>처럼 6억∼10억원 규모의 저예산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미니 스튜디오를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사이즈에 맞게 배급 규모가 세분화됐으면 좋겠지만, 지금 한국시장의 경우 단관 아니면 와이드 릴리즈다.” 이모션픽쳐스로선 앞으로 몇년 동안 버티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투자, 배급을 겸하고 있는 몇개 멀티플렉스 체인들로 시장이 급속하게 압축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촌의 한 멀티플렉스의 경우, 주변에 브랜드를 앞세운 주요 멀티플렉스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관객이 떨어져나갈 것이다. 똑같은 영화를 걸어서는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작은 영화들의 활로 또한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2005년 성적표/ <불안>(1127명), 페데리코 펠리니 기획전(1656명), 70년대 미국영화 특선(1812명)

2006년 라인업/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샹탈 애커만 감독의 <갇힌 여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김응수 감독의 <달려라 장미>,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작 <언러브드>,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감독의 <오고 가며>,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아브라함 계곡>을 준비 중이다. 기획전은 현재 프로그래밍 중이라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D필름은 작은 영화 배급, 마케팅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생 영화사다. “수입을 해놓고도 마케팅 비용 때문에 개봉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D필름은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와이드 릴리즈 배급 체계에 분명 틈새시장이 있다고 판단한다. D필름이 컨설팅을 자청하는 영화들은 “2만∼5만달러 사이에 수입된 외화들과 저예산 한국영화들”이다. “P&A 예산이 2천만원밖에 없으면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프린트 5벌이면 우리한테는 와이드 릴리즈다.” D필름의 원칙은 프린트를 최대 5벌로 정하고, 지역 극장을 순회하는 로드쇼 형태의 상영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적정 스크린 이상을 넘을 경우, 좌석점유율을 떨어뜨리고 상영기간을 단축시킨다. 그렇게 무리한 욕심을 부려 실패를 자초하기보다 D필름은 한계상황 내에서 편당 플러스 수익을 기록하기 위한 조언과 전략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첫 배급작인 <빙 줄리아>는 이미 부가판권을 수입업자가 다 판 상태라 극장 개봉이 우선이었지만, 700만원의 초저예산 광고비를 들여 한정된 형태로라도 로드쇼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서울에서 약 1200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빙 줄리아>는 11월18일 부산 해운대 프리머스에서 연장상영되면, 약간의 수익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하영 대표를 비롯, 강기명, 김윤미 등 구성원들이 이전에 배급·상영 부문에서 이력을 쌓아왔다는 점은 D필름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D필름의 ‘맞춤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배급 노하우나 인맥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강기명 실장은 “우리가 앞으로 주력하고자 하는 건 극장 마케팅이다”라면서 “영진위가 실행하고 있는 전국의 아트플러스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적극적인 극장 마케팅을 펴지 못해서”라고 지적한다. D필름의 경우, 타깃에 대한 세심한 고려없는 무차별 광고는 지양하는 대신 지역 특색에 맞는 마케팅 방식을 개발한다는 복안이다. “먼저 서울에서의 반응이 좋아야겠지만, 지역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로드쇼는 성공할 수가 없다. 지역민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집중 공략하거나 서울에 비해 부족한 극장 이벤트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빙 줄리아>에 이어 메가박스, 필름포럼 등에서 11월18일부터 상영예정인 <영화소년 샤오핑>의 경우, 2만달러가량의 판권료는 케이블에 판권을 넘기면서 해결했고, 통관료까지 포함해 약 3천만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 해당 극장에 선재물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는 계획이다.

2005년 성적표/ <빙 줄리아> (1300명, 11월9일까지)

2006년 라인업/ 현재 옥석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들여온 영화 중에 두면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할 영화들을 비롯해 여기저기 영화사들과 접촉 중이다. 인디스토리쪽에도 이탈리아, 일본영화가 1편씩 있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극장만 잡아놓고서 왜 안 올까 고민하는 것보다는 관객에게 적극적인 관람 계기를 만들어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D필름이 찾는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처럼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선에 있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