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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빈민가의 풍경이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재현되었다거나 결국은 빈민가 소년의 백만장자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비판을 전적으로 틀린 평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를 말할 때, 길게 언급할 만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정작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지점은 영화 속 현재가 과거를 호출하는 방식, 다시 말해, 퀴즈쇼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자말은 어떻게 모든 질문의 답을 아는가?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어떻게 자말의 과거 경험담과 일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아함은 사실, 이 영화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뻔하거나 영화상에서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물음이다. 물론 영화 내에서 그걸 의문시하는 인물들은 있다. 퀴즈쇼 진행자와 경찰인데, 자말은 그들에게 ‘우리(하층민)가 삶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터득할 수밖에 없는 답들을 모르는 당신들이 이상하다’는 식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반대하는 남다은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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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을 때,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도 않았었다. 심지어 영화 예고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몇주 전 사다놓은 원작 소설도 읽어보지 못했으니, 이 영화에 관련된 내 지식은 이 영화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의 이름과 기본 설정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당연히 이 영화를 옹호해야 할 입장이 되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잠시 머리를 굴리자 답이 나온다. 아, 출신성분.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작품을 보지 않고 출신성분을 읊는 것으로 비평 절반이 끝날 수도 있는 영화다. 생각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뭄바이의 빈민가 출신 소년이다. 종교분쟁으로 고아가 되었고 뭄바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험악한 일들을 다 겪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엘리트 가문 출신인 부유한 인도 외교관 비카스 스와루프의 영어 소설이 원작이고 인도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국 감독 대니 보일과 영국 작가 사이먼 뷰포이가 각색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찬성하는 듀나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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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 부조리한 기적을 어떻게 믿지?
A :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 감독은 여전히 몽상가거든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최다 8개 부문을 수상했다. 게다가 정말 ‘골고루’라는 표현에 걸맞게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서 각색상, 인도풍 음악이 대부분인 사운드트랙으로 음악상과 주제가상, 그리고 100% 낯선 인도 로케이션으로 촬영됐음에도 촬영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올해 아카데미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단 하나의 작품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얼핏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생각될 법도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그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이유는 뭘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둘러싼 이모저모와 더불어 이 영화를 바라보는 듀나와 남다은 평론가의 서로 다른 두개의 시선을 싣는다.
<텔레그라프>의 데이비드 그리튼이 ‘오바마 시대의 첫 번째 영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슬럼독 밀리어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 부조리한 기적을 어떻게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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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소아성애자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스티븐 달드리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논쟁적인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화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가 개봉한 직후, 발빠르게 올라온 몇몇 인터넷 리뷰들은 다른 무엇보다 영화 속 10대 소년과 30대 여성의 육체적 사랑에 대해 침 튀기며 설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이클을 맡은 독일 배우 데이비드 크로스가 만 18살(독일에서는 18살이 넘어야 섹스신을 찍을 수 있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촬영할 정도로 철저하게 규정을 지켰지만, 달드리 자신은 영화 속 섹스신이 그리 많지도 혹은 굉장히 논쟁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보시라. 책에는 섹스에 대한 더 많은 본질적인 묘사들이 들어 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찍었다고 생각하는데….”(스티븐 달드리) 그러니까 이건 폭력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고통의 역사에 구경꾼의 역할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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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0년대 들어서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스스로에게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그에게 딱 맞는 기회가 돌아올 리 없었다. 보잘것없는 영화들을 전전하던 그는 TV쪽으로 건너왔고, 마침내 그에게 첫 번째 도약의 발판이 찾아왔다. 세명의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인기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192cm에 달하는 이 껑충하고 말수 적은 남자가 카우보이 역을 그럴듯하게 해낸다는 걸 깨달은 주변인들의 추천은, 그를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로 이끌었다. ‘이름없는 남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스트우드는 기존 존 웨인 스타일의 선하고 정의로운 카우보이도, 혹은 제임스 코번이나 리 반 클리프가 단골로 맡았던 피도 눈물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살아 있는 신화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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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무법자> (1966)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서 농장의 미남 감독관으로 첫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으로 옮겨간 뒤에는 질겅질겅 시가를 씹어대는 거칠고 비정한 사나이로 돌변한다. 이 둘의 차이는 그 부드러운 미소와 찡그림만으로도 확연하다.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공적인 첫 번째 연기 변신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수는 별로 없지만 말을 잘 타고 피곤함과 체념에 젖은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남자의 시가와 언제나 장전된 총은 오랫동안 그의 도상이 됐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당신이 시키는 건 다 하겠어. 담배만 빼고”라고 말할 정도로 담배를 싫어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어이 친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대비를 우두커니 맞던 그 몇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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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는 몽족 소녀 수를 괴롭히는 흑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너네들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바로 나야.” <그랜 토리노>에서 이것이 꽤 인상적인 대사인 것은 <더티 하리>(1971)에서의 하리가 했던 짧지만 그 유명한 대사 “덤벼봐”(Make my day!)와 공명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랜 토리노>의 월트는 하리 캘러한이 은퇴한 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듯이 느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금 더 들여다보면 월트라는 존재에게서는 하리 이상의 어떤 자취가 묻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침을 뱉듯 피를 토하는 것이나 총을 겨누는 자세 등에서 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다른 영화들에서 그가 보여줬던 면모들과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랜 토리노>는 <사선에서>(1993)의 대사에서처럼 ‘살아 있는 전설’로서의 이스트우드와 대면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볼만 하다. 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의 연기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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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전환점 <그랜 토리노>…
연기론·활동사·명장면·인물지도 통해 그를 돌아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돌아왔다, 라고 써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돌아왔다. 이미 이 영화가 그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고별사가 될 것이라는 예고도 심심찮게 전해져온다. 그러고 보면 의미심장한 영화다. <그랜 토리노>를 본 다음 우리는 하나같이 이번에야말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관해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라며 입을 모았다. 그의 영화를 주목해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손짓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그가 걸어온 활동사를 요약했다. 그리고 그가 왜 훌륭한 감독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배우였는지를 명캐릭터, 명장면으로 뽑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한 관계 지도는 그에 대해 시시콜콜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흡족함을 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바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살아 있는 신화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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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가 3월19일 개봉한다. 한국 내 홍보자료의 문구는 ‘가족에게 찾아온 불협화음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 따스한 가족영화’다. 기요시의 팬들이라면 미리 실망할 필요 없다. 따스한 가족영화라니. 대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건 <큐어>와 <회로>와 <절규>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다. <도쿄 소나타>는 무시무시한 가족 지옥도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절규>(2006)는 걸작이었다. 그러나 <절규>는 정식으로 국내 개봉하지 못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나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 같은 기회를 통해 소수의 구로사와 팬들을 만났을 따름이다. 정식으로 개봉해봐야 돈을 벌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일까. 억측은 젖혀두자. 문제는 <절규>를 먼저 거론하지 않고서는 <도쿄 소나타>를 이야기하는 게 조금 재미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절
[must see] <도쿄 소나타> 따뜻한 가족영화라니 당치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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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5월7일 그 비밀스러운 정체를 드러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TV시리즈 <스타트렉>을 원작으로 한 열한 번째 영화다. 제작비로 1억5천만달러를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스타플리트 생도들의 재집합에 머리를 맞댄 이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감독좌에 오른 이는 뛰어난 아이디어맨 J. J. 에이브럼스요, 각본가는 <트랜스포머>를 성공으로 이끈 로베르토 오치, 알렉스 커츠먼 콤비. 게다가 스포크의 또 다른 자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배우 레너드 니모이까지 얼굴을 비춘다니, 올드팬은 물론 잘 만든 블록버스터라면 흔쾌히 지갑을 열 젊은 영화광들까지 모두 끌어안겠다는 심사다. 2월25일, <스타트렉>의 프리퀄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개봉에 앞서 J. J. 에이브럼스 감독과 주연배우 크리스 파인, 조이 살디나가 한국을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30분 분량의 클립 네개를
<스타트렉: 더 비기닝>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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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고딕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동화 속 나라 벨기에의 브리주에 킬러들이 왔다. 런던도 파리도 베를린도 뉴욕도 아닌 브리주라니! 브리주가 어디냐고? 전문 킬러라면 절대, 실수로라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곳이 이곳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부터 약 한 시간 거리의 작은 소도시 브리주, 이곳에 도착한 두명의 킬러. 딱히 지시를 받은 것도 없는데다, 킬러의 필수품인 권총 하나 챙겨오지 않았다. 등에는 배낭을, 한손엔 가이드북을, 그리고 여행자 숙소인 B&B에 가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꽉 차버린 방이 언제쯤 비는지 진지하게 묻고 박물관 앞에선 10센트만 깎아달라고 통사정한다. 전망 좋은 종탑과 고풍스러운 성당, 운치있게 흐르는 운하가 내내 그들의 배경이 되어준다. 이건 말이다, 은퇴를 앞둔 킬러가 마지막 작업을 지시받고 아르헨티나 가서 탱고를 배운다는 로버트 듀발의 <어쌔신 탱고> 이상으로 사뭇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주목할 만한 신예 마틴 맥도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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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 see] <킬러들의 도시> “100번도 더 본 갱스터물은 잊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