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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송년결산] 올해의 영화 베스트 5
정한석 2008-01-01

가혹하게 스며드는 비밀스런 햇볕을 바라보다

1위 <밀양>

고통과 구원에 관한 단단하고 끈질긴 질문

비밀스런 햇볕이 많은 이의 가슴에 조용하고 오래도록 깃든 한해였다. 그 결과 2007년 <씨네21> 올해의 영화 1위에 <밀양>이 선정됐다. <밀양>은 어쩌면 우리가 올해 본 가장 가혹하고 힘겨운 영화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미 찾아온 불운을 넘어서기 위해 도착한 갱생의 장소에서 또다시 맞이하게 된 불운과 그 때문에 가속도로 미쳐가는 주인공. 영화는 그 삶에 처한 인물과 그를 보는 관객 양쪽 모두에게 버티기 힘든 경험치를 요구했다. 그 경험이 요구하는 바의 저편에는 그렇다고 속 시원한 대답이 있지 않았고 모호하지만 수긍해야 할 거대한 질문이 남았다. <밀양>은 남아 있는 그 질문을 괴롭지만 끈질기게 생각하게 했다. “이창동 영화의 괴로움을 받아들인다면 소진된 거짓 의미들에 더이상 기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진귀한 반짝임마저 사라져서는 살아낼 수 없다고 당신의 몸이 말하기 때문이다”(허문영)라는 표현은 <밀양>이 도저한 고통과 구원에 관해 묻는 진귀한 사례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밀양>이 던진 이 질문은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편 “밀양이라는 소도시에 살아가는 인물 군상이나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밀양>이라는 영화가 재미있고 좋은 이유는 주로 거기 있다”(이현경)는 의견은 <밀양>이 공간감과 인물 묘사 면에서도 성취한 바가 크다는 걸 말해준다. 전도연, 송강호라는 두 주연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를 비롯하여 그에 버금갈 만한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가 두툼한 지반이 됐다.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이동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라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구조를 탄탄하게 견지하면서도 카메라의 시선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걸 말해야 할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확실히 <밀양>을 통해 깊은 영화적 표현의 길로 접어들었다. 혹은 단단한 대답 대신 더 단단한 질문을 던진다. <밀양>은 이창동 영화 세계의 어떤 기념비적인 정점이자 시작으로 기록될 만하다.

“관객과 앞으로 어떻게 만나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밀양>의 이창동 감독 수상소감

이창동 감독은 뉴욕에서 소식을 들었다. 내년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출품작인 <밀양>의 시사회를 논의하기 위해 머무르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밀양>은 칸과 아카데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2007년 올해 한국영화다. 그는 수화기 너머 예의 그 나직한 음성으로 소감 대신 상념을 꺼냈다. “오래간만에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 모두가 쉽게 반응할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좋아해줬고, 그게 고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감각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관객과 앞으로 어떻게 잘 만나야 할지에 대해서. 내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어 전도연과 송강호 두 배우가 올해의 배우로 나란히 선정된 것에 관해서는 “영화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열정적인 사람들이라 귀감이 될 만하다. 송강호씨는 특별한 역할을 특별하게 해준 것이 고맙고, 전도연씨에게는 특히 내가 미안한 마음이 있고(웃음)”라며 축하를 대신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말을 걸기를 기다려야지. 하긴 이런 말은 원래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다. (웃음)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긴 하다. 음… 빨리 시작해야지.” 그의 구상이 어서 말을 걸기를 우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정한석

2위 <천년학>

임권택 영화의 우아함이 이룬 절경

<천년학>이 2위에 오른 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기념비적 사건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다. 비교컨대 올해 <천년학>에 버금갈 만한 영화적 도전과 성취를 이룬 한국영화가 얼마나 더 있을 것인가. 임권택 감독은 송화와 동호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었으나 결코 <서편제>의 관습적인 후속편을 내놓지 않았으며 창이라는 소리와 그걸 행하는 주인공들의 행위 또는 사건 사이에 물흐르듯 신기한 결연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때때로 영화는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듯한 신묘함을 선보였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긴박하고도 격정적인 속도감으로 전개된다. 정겨우면서도 멋들어진 장면도 여럿이다. 그러니 “궁핍하고 어려운 삶을 다루지만, 인생을 살아가고 건너다보는 눈길은 인생의 마지막으로 가게 되면 우아하다. 영화적 리듬은 드물게 유장해 굳이 극을 만들거나 분할하지 않으며, 어렵게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은 유려하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가 만들어낸 한국 영화계의 치유의 순간이다. 우리의 삶도 이리할 수 있기를(김소영)”이라는 바람은 진심일 것이다. 간결한 한마디로 하자면, <천년학>은 “임권택 영화의 우아함이 이룬 절경”(남동철)이다.

3위 <경계>

윤리적 자태를 형식에 녹여내다

첫 장편 <당시>를 내놓았을 때 장률 영화의 지지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혹은 그건 중국영화였다. 지금, 그의 영화 작업은 국내에서 점점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해 두 번째 장편 <망종>으로 <씨네21> 베스트 4위에 들더니 올해 <경계>는 3위에 올랐다. <경계>의 지지자들은 이 영화에 형식의 윤리와 욕망의 원초성이 동석하고 있음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망종>에 이어 여전히, 아니 더 굳건하게, 그의 형식에는 태도가 있다. 결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재나 내용적 차원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형식의 윤리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사유하게 하는 영화”(남다은), “지평선 외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경계도 보이지 않는 몽골의 자연 속에서 숨쉬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담아낸 작품”(김지미)이라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탈북자 모자가 사막에서 묘목을 심는 몽골 남자의 집에 잠시 거주하는 이야기인 <경계>는 소란스럽지 않은 화법으로 말하고 있으나 때때로 꿈틀거리는 욕망이 육중하게 느껴지고, 전반적으로는 몽골이라는 지역의 풍속과 환경을 따르는 겸허한 윤리적 자태를 형식에 녹이고 있다. 작가적 정체성에서도, 주제나 형식에서도,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화의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장률 영화의 면모는 앞으로도 주목을 요할 것이다.

3위 <우리학교>

주관적인 다큐, 대중과 통하다

2007년 한국영화의 즐거운 활력소라고 할 만한 영화 <우리학교>가 공동 3위에 올랐다. 홋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과 임직원들의 일상적인 삶을 활기있게 포착해낸 이 다큐멘터리는 이래저래 유의미한 작품이다. 적은 개봉관으로 시작했지만 관객의 입소문과 적극적인 순회상영 등으로 총관객 9만명을 넘어 독립영화가 대중과 어떻게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는지에 관해 입증하는 좋은 사례가 됐을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양식이 얼마나 쾌활하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양식인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창작자 본인이 관심있고 잘 아는 인물들에 관해 주관적이면서도 격의없이 담아낸 이 기록은 연신 웃음과 울음을 넘나든다. 때문에 “카메라의 원초적인 힘을 느낀다”(김봉석)는 간결한 평에서부터 “하나의 사실에 3년 이상 매달리며, 그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집요한 태도가 돋보였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전체적으로 조선인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충분히 전달하고도 남았다”(한창호)는 지지까지 폭넓게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다큐멘터리가 순위 안에 든 것은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지난 2004년 올해의 영화를 차지한 지 3년 만이다.

5위 <>

감각의 논리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다

지난해에 이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올해도 여전히 고르고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빈 집>에 이어 김기덕 영화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에서 보여주는 김기덕의 윤리적, 미학적 분투는 치열하고 아름답다. 그동안의 한국영화에서 <>만큼 언어 이전의 ‘감각의 논리’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해내는 데 성공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변성찬). 혹은 “가장 ‘영화적인’ 작품이다. 문학이 아니라 영화, 그러니까 대사나 줄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면 구성과 배치에 의해 의미와 쾌감을 전달하는 영화의 본원적 의미를 가장 잘 살린 영화다”(황진미) 등이 <>에 관한 애정 어린 설명이다. 김기덕 감독은 본인의 영화를 ‘반추상의 영화’라며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그의 요즘 영화의 경향은 추상의 세계에 더 근접해가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굵직한 철학적 화두를 중심에 놓고 정면으로 정진하고 풀어가는 것에 골몰하기 때문인데, 평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 역시 무척 간결하거나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이끄는 강력한 화술의 힘으로 보는 이를 마침내 숭고하고도 복잡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더 강렬해질 김기덕 영화 세계의 독창적인 힘이기도 하다. 그의 새 영화 <비몽>(가제)은 나의 꿈이 타인의 현실과 뒤섞이는 이야기라고 하니 김기덕의 영화적 ‘돈오’는 과연 그칠 줄 모른다.

지아장커는 더 깊어질 것이다

1위는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2위는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

“근대화라는 미친 질주에 맞서는 의연하고 유려한 태도와 화법”(변성찬)에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가 이어진 끝에 <스틸 라이프>가 올해의 외화 1위로 선정됐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서 중국과 동시대를 향한 묵직하고 어른스러운 연민을 길어올린 지아장커가 앞으로 더욱 깊어지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역시나 거의 모든 필자들이 올해의 외화 중 한편으로 꼽은 <인랜드 엠파이어>가 뒤를 잇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끝을 모르고 기괴해지는 데이비드 린치의 무시무시한 악몽이, “해독불가한 동시에 무한한 의미망으로 확장되는 모든 통로를 열어준다”(김지미)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시대의 한복판에서 발견한 최고의 디지털영화이자 올해 최고의 호러영화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소박한 화법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 그 어떤 액션히어로보다도 담백한 캐릭터와 스타일이 돋보이는 <본 얼티메이텀>이 나란히 3위에 올랐다. 거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폭력의 역사>와 여름철 액션영화의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낸 <본 얼티메이텀>은 전혀 다른 영화. 그러나 “내용이나 주제도 좋았지만 그 둘을 구축하는 경제적인 접근법”(듀나)이라는 <폭력의 역사>에 대한 코멘트가 두 영화 모두에 적용될 수 있을 듯 보인다. 지난해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외화 1위를 차지했던 리안 감독은 2007년에도 <색, 계>로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리안의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또는 예술)에 대한 자기 반영적인 고민(또는 탐색)이 배어 있는 작품”(변성찬)이자 장인의 경지에 오른 감독과 배우, 스탭들이 완성한 매혹적인 대중영화이다.

외국영화 베스트 5 1위 <스틸 라이프> 2위 <인랜드 엠파이어> 3위 <본 얼티메이텀> <폭력의 역사> 5위 <색, 계>

부풀려진 이무기, 가려진 별빛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 <디 워> <화려한 휴가>, 과소평가된 영화는 <별빛 속으로>

올해 송년설문에는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와 과소평가된 영화를 묻는 문항이 추가됐다. 우선 응답자들은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로 <디 워>(8명)와 <화려한 휴가>(7명)를 나란히 꼽았다. “흥행기록으로, 그리고 영화 외적인 요소들로 지나치게 환대받은 영화들. 두 영화 모두 영화 형식에 대한 고민에서 무척 게으른 태도를 취했다”는 평론가 남다은의 견해는 다수 의견의 정곡을 찔렀다. 이외에도 <M> <우아한 세계> 등이 과대평가 영화로 꼽힌 작품들. <밀양>을 과대평가받은 영화로 선정한 경우도 있었다. 스스로 <밀양>을 한국영화 1위로 꼽았던 이현경 평론가는 “우선 내용과 관계없이 ‘칸’ 효과로 인해 과대평가된 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다음으로 내러티브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들은 줄이거나 뺐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이러니’에 관해 설명했다.

<별빛 속으로>

한편 가장 많은 응답자가 과소평가된 영화로 꼽은 작품은 <별빛 속으로>(4명)였다. 관객이 진가를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찍 극장에서 떨어져야 했던 이 영화에 대해 송효정 평론가는 “비인기 감독이 만든 비주류 장르영화기 때문에 관심과 평가에서 다소 소외된 감이 있다…. 황규덕 감독이 오래 인내하고 준비하며 개척한 것이기에 값져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천년학>과 <>도 과소평가된 영화로 여러 명이 꼽았다. “이야기를 잃어버린 시대 혹은 이야기가 더이상 불가능한 시대의 형상화로서… 그 불가능성 자체를 재현하는 영화”(남다은) <M>과 “관객의 측면에서 충분히 느꼈을 만한 이 영화의 긍정적인 측면이 주류평단에서 간과되었다는 느낌”(황진미)을 준 <디 워>를 과소평가된 영화로 꼽은 견해도 있었다. “전 심형래 감독의 할리우드 장르영화들에 대한 과소평가가 정말 싫더군요”(듀나)라는 엉뚱한(?) 의견도 존재했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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