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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읽던 이국의 모험담은 불길한 징조와 견딜 수 없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락하는 코스만으로 이루어진 롤러코스터처럼, 남자가 되려는 소년, 아름다운 여인, 치명적인 오해, 이룰 수 없는 운명, 발작적인 쾌락, 거대한 마침표처럼 뚝 떨어지는 죽음이 쉬지 않고 휘몰아쳤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도 그렇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시에 지극히 통속적이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던 사폰을 스타로 만든 첫 (성인용) 소설 <바람의 그림자>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바르셀로나 뒷골목 냄새가 어디선가 풍기는 기분에 코를 킁킁거리며 책 주문 버튼을 자동적으로 눌렀을지도 모르겠다. 두 책은 ‘잊힌 책들의 묘지’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그 어떤 TV연속극보다 중독성이 강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좋아했던 고아 다비드 마르틴은 우연한 기회에 소설을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의 대중소설은 큰 인기를 얻는데, 신문사를
[도서] 우아하고 그로테스크한 꿈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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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역관 김홍륙이 고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타넣은 독살음모가 있었다. ‘러시아 커피’를 개화기식으로 표기한 <노서아 가비>는 이 일화에서 탄생한 팩션이다. 주인공 ‘따냐’는 역관의 딸로 태어났으나, 조선을 떠나 청나라와 러시아를 떠돌아야 했던 여인이다. 러시아에서 광활한 숲과 바다를 귀족들에게 팔아치우는 대담한 사기극을 벌이던 따냐는, 조선 태생의 또 다른 사기꾼 ‘이반’을 만나 사랑하고, 역관이 된 그와 조선에 돌아오고, 그 뒤 고종의 새벽 커피를 담당하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된다.
<노서아 가비>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불필요하다.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변주되었는지보다 따냐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따냐에게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그랬듯, 독자는 따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면 된다. 그만큼 살기 위해 남을 속이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사랑하는 이에게 아흔아홉을 주더라도 마지막 하나는 자
[도서] 고종과 커피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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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람의 말>은 2009년 6월9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대한문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6·9 작가선언’의 기록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우리냐 그들이냐를 두고 고민하거나 싸우는 사람들 옆에서 쿨시크를 표방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갑갑함이 다소나마 해소되는 기분이다. 시국선언에 동참한 작가, 평론가들의 선언문과 참가자 이름만 실린 건 아니다. 각자 자신의 뜻을 문장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참여자들의 이름을 살피고, 좋아하는 작가가 쓴 문장을 읽고, 그냥 처음부터 읽고, 후루룩 넘기다 눈길 가는 문장을 새기며 모르던 작가 이름을 새로 알게 되기도 하고, 마지막부터 거꾸로 읽고…. 마음만 먹으면 10분 만에 다 볼 수도 있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일주일도 부족한 책일 수도 있다. 내가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문장을 골라 소개한다. 손에 잡히는 종이에 당신의 문장을 끼적여보는 것도 좋겠다.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곽은영)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도서] 침묵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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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할 만하다 지수 ★★★★
시간 없을 때 읽기 시작하면 낭패 지수 ★★★★★
비디오방-만화방-당구장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청춘을 소모하던 10년 전, <바나나 피쉬>라는 게 입소문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추천 이유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대작이니까 꼭 보라는 모호한 말부터, 색다른 순정만화라는 친구도 있었고, 야오이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야오이물이라는 말도 있었고… 한 만화를 두고 하는 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제목에, 줄거리는 복잡하고, 작가는 낯설고, 웬만해서 첫눈에 반하기 쉽지 않은 그림체였는데 입소문은 무섭게 퍼졌다. 읽은 사람 모두가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끝까지 읽은 사람은 <바나나 피쉬>를 숭배했다. 입소문이 났던 즈음엔 이미 만화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바나나 피쉬>가, 이번에 완전판으로 부활했다. 번외편을 모은 외전집과 공식 가이드북도 함께 출간되었다.
<바나나 피쉬>는
[도서] 전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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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앙리 마티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버나드 쇼. 열일곱에 치명적인 미약(媚藥)을 발견한 오스왈드와 그 일행에 사기를 당한 희생자들의 명단 중 일부(!)다. 철저하게 부도덕하고 이윤과 향락만을 추구하는 오스왈드는 이 미약을 이용해 스물이 되기도 전에 백만장자가 되는데, <나의 삼촌 오스왈드>는 오스왈드를 ‘평생 한량’으로 만든, 대담하고 섹시한 사기극의 전모를 폭로한다.
오스왈드가 수단에서 공수한 미약은, 80 먹은 노인도 9분 만에 섹스머신으로 변신시키는 비장의 무기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의 야스민이 미약이 들어간 초콜릿을 세기의 천재들에게 먹이면, 그들은 9분 뒤 야스민을 탐하게 된다. 콘돔을 씌워 행위를 마치고 정자를 가져오면 임무는 끝. 천재의 어머니가 되고픈 부유한 여인들은 앞다투어 냉동된 정자를 사간다.
소설은 이 발칙한 활극 중 ‘야스민의 정자 수집과정’을 정성스레 기술한다. 유명인들과 야스민이 벌이는 육탄전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단연
[도서] 웃기고 섹시한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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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가 아니라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를 팔아라.” 영화마케팅에서 제1의 금언으로 앞의 문장을 내세우며 시작하는 이 책은, 제목처럼 ‘영화마케팅의 A to Z’를 논한다. 저자인 로버트 매리치는 <할리우드 리포터>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영화 및 TV업계의 엔터테인먼트 마케팅과 관련해 20년 이상 글을 써온 저널리스트. 영화와 관객 그 사이에서 마케팅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영화마케팅에 대한 모든 것이라니, 조금은 솔깃했을 독자들에게 감히 경고하면 이 책을 심심풀이로 읽어내려가는 교양서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본격적인 영화마케팅 실무를 풀이해준 교본 같은 존재로 봐야 적당하다. 전문용어와 정의, 조사방법론, 용례 순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수업시간에 줄그어 읽었던 교과서를 연상시킨다. 할리우드가 기준이 된 까닭에 한국영화 마케팅에까지 100% 적용하기 힘든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그래
[도서] 영화, 어떻게 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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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맞은 청소년을 위한 선물 지수 ★★★★☆
주변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지수 ★★★★☆
닐 게이먼의 이름만 보고 책장을 펴고 읽기 시작하다가, 그림이 많다는 데 당황했고 그리움을 자극하는 착한 말투에 또 한번 당황했다. 표지를 다시 보니 ‘2009 뉴베리상 수상작’. 뉴베리상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아동문학상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공동묘지에서 키워진 한 소년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했던 청소년 독자와 성인 독자의 관심을 끌 법한 책이다.
어느 날 밤, 잭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일가족 살해에 나선다. 두 부부와 여자아이를 해치운 뒤 그는 마지막 남은 사내아기를 찾아 집을 뒤진다. 갓난아이는 젖비린내와 초코 과자, 축축하게 젖은 일회용 기저귀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남기고 사라진다. 걸음마를 갓 배운 아기는 공동묘지의 주민들, 그러니까 유령들의 눈에 띄고, 그들은 잭을 따돌리고 긴 토론 끝에 아기를 키우기
[도서] 공동묘지의 노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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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키단 히토리는 일본 개그맨이다. 보통 둘이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지만 그는 혼자 ‘1인 극단’이라는 예명을 지어 활동하고 있고, 괜찮은 집안에서 성장한,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연기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 지적인 이미지에 일조한 것 중 하나가 이 소설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다. 연작 단편이 모여 인간의 마음이라는 모자이크를 채워가는 소설이다.
여기는 자유롭고 싶다는 이유로 홈리스 흉내를 내다 아예 가출해 홈리스가 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도박 빚에 쪼들려 할머니에게 사기를 치려는 남자도 있다. 딱 열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든 여자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어째 다 허망하기 짝이 없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음 이야기에 조연으로 등장하고,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외톨이였던 이들이 변화를 겪는다. 일본에서 5년 만에 탄생한 밀리언셀러가 된 이 책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연작 단편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측 가
[도서] 5년 만에 탄생한 밀리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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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낄낄거리면 주변에서 쳐다보게 마련이다. 이때 머쓱해진 독자는, ‘다음엔 속으로 웃어야지’라고 결심하지만, 그 결심이 무색해지는 순간은 다시 찾아온다. 주위의 눈총이 따가워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책,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가 그렇다. 기행문인 양 제목을 달아놓고 (실제로 여행하면서 쓴 글인데도) 여행보다는 캐릭터에 기대어가는 이 책은, 그저 같은 학교(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같은 직업(방송국 인기 시트콤 작가)에 종사하는 어쩌다 시간이 남은 (운 더럽게 좋은) 두 남자가, 40년 묵은 고가의 킨클레이스 스카치위스키를 걸고 벌이는 여행 경주에 대한 사적인 기록이다.
LA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출발해 먼저 원점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이 경주엔 조건이 있다. 비행기를 타지 말것, 그리고 모든 경도를 지날 것. 육로와 해로만을 이용한 세상밟기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상천외한 시각을 가진 두 남자의 일기장은 지루한 순간에 대한 묘사에서조차
[도서] 웃기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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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싶어진다 지수 ★★★★
지루하지 않다 지수 ★★★★☆
<아폴로의 눈>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지음 바벨의 도서관 펴냄
<마이더스의 노예들> 잭 런던 지음 바벨의 도서관 펴냄
소설가가 쓴 독서일기류의 책을 볼 때면 흥미로운 점. 자기가 쓰는 소설과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사이에 분명한 연결고리가 보인다. 더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소설가의 독서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들(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헤밍웨이…)의 경우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자기가 쓰는 방식으로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겠지). 바벨의 도서관에서 펴낸 ‘보르헤스 기획 세계문학전집’은 보르헤스가 좋아했던 작가와 그들의 소설을 소개하는 책이다.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소개하는. 전집 첫 번째 책은 추리소설의 고전인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 K. 체스터튼의 단편집 <아폴로의 눈>이고 두 번째 책은 <강철 군화>를 쓴 잭 런던의 단편
[도서] 보르헤스가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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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여행사 ‘소셜투어’는 트레킹 상품을 판매한다. 소셜투어는 포터 자신의 짐을 포함해 20kg이 넘는 짐은 맡기지 않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준다. 일당 500루피는 다른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포터에게 직접 전한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포터들의 인권에 대해 교육한다. 관광객을 위해 현지인들이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지기의 일환이다. 인권뿐 아니라 환경도 보호 대상이다. 여행자들은 비닐봉지나 1회용 플라스틱 물병 대신 가방과 물통을 가져가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관광객이 얻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고 돌아가는 이방인이 되는 대신 지속 가능한 개발에 일조했다는 만족감이다.
<희망을 여행하라>는 ‘공정여행’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공정여행을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그곳의 자연을 지켜주는 여행’으로 정의한다. 스페인에서 쿠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
[도서] 함께 행복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