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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그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동안 너무 게으른 독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쓰였고, 그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읽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준엄한 뉘우침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앓느니 죽지. 나는 역시 게을러터진 인간이로군.
책에 대한 책인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은 게으른 독자에게도 부지런한 독자에게도 알맞은 독서 체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엮음’이라고 되어 있는 이 책은, 정말 성석제가 문장을 엮어 펴낸 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단을, 책 속 한 장면을 소개하는 책이다. 2∼3페이지 정도 분량의 장면을 발췌한 뒤 성석제는 아주 짧게 첨언한다. 고등학생 때 밑줄 그어가며 배운 김유정의 <봄봄>부터 불안함까지 동경하게 만들었던 전혜린의 <마지막 편지>, 젊은 독자가 사랑하는 김애란의 <
[도서] 당신을 유혹하는 책 속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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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마셜의 고귀한 호러영화 <디센트>의 소설판, 혹은 소설로 만들어진 <디센트>의 속편인 줄 알았다. 읽다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둘 다 지하의 지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히말라야 산맥을 트래킹하던 여행자들이 폭풍우를 피해 동굴에 몸을 피신한다. 거기서 온몸에 기괴한 기호가 새겨진 시체를 발견한 여행자들은 점점 동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이야기는 영화 <디센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
칼리하리 사막에서는 태평양 밑바닥까지 이어지는 동굴이 발견되고, 보스니아의 유엔부대는 지하에서 등장한 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결국 지구의 지하에는 인류와 다른 진화를 거듭해온 백색 피부의 변종들이 살고 있음이 밝혀진다. 게다가 제프 롱은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바티칸이 등장하는 <다빈치 코드>식 종교-팩션물로까지 확장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쓰여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철학적 성찰’은 반농담이다. 그래도 마이클
[도서] 지하 지옥으로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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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는 착한 책이다. 한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 두잔을 마시면 손님, 세잔을 마시면 가족이라는 히말라야 기슭 작은 마을의 사고방식에서 따온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히말라야의 오지 마을에 78곳의 학교를 세운 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논픽션은 희망과 가치를 긍정하게 만든다.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K2 등정을 갔다가 조난을 당한 그레그 모텐슨은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되었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신세를 갚기 위해 가진 물건을 죄다 나눠주고 외상 전문 간호사로 받은 기술을 동원해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그 마을에 학교가 없어 82명의 아이들이 허허벌판의 얼어붙은 맨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일주일에 세번 오는 교사에게서 수업을 받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수잔 서랜던과 오프라 윈프리와 정치인과 전국 방송사 뉴스 앵커들을 비롯한 저명인사 580명에게 학교를 세우는 일을
[도서] 78개의 학교를 세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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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아무도 죽지 않는 사회. <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죽음의 중지>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디스토피아다. 죽음의 직무유기는 느닷없이 찾아온다. 1월1일,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이 시작이다. 노인은 마지막 숨을 놓지 않고, 사산이나 다름없던 아기는 그저 살아만 있다. 영생의 기쁨에 도시가 환희에 겨웠던 것은 잠시다. 생명보험회사, 장의업체, 종교 등 죽음을 팔아온 집단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대책을 강구한다. 극단적 고령화 사회를 앞둔 정부, 영원히 사는 부모들을 공양해야 하는 자식들도 조용히 패륜에 동조한다.
사라마구의 특기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제거한 다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노작가의 예리한 통찰력과 명석한 두뇌는, 이번엔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이자 구원의 대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전반부는 아수라장이 된 사회를 관찰하고, 후반부에서는 ‘죽음’(여성이다)을 등장인물로 불러온다. 인용부호는 찾아볼 수 없고
[도서] 영생이라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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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소설 지수 ★★★★
미스터리 지수 ★★★
“요즘 일본에서는 경찰소설이 큰 인기입니다.” 지난해 가을 취재를 위해 만났던 일본 <미스터리 매거진> 편집장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최근 경향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왜 경찰소설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소설 한권을 꼽으라면 바로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아닐까 한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한 이 소설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찰 3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후 일본. 안조 세이지는 생활고로 고민하다 경찰이 된다. 경찰이 되기 그리 어렵지 않던 시기, 세이지는 성실한 근무 태도로 도쿄 덴노지 주재소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경찰 끄나풀로 의심받던 남창 살인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터지자 세이지는 혼자 탐문을 하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인근에서 큰 화재사건이 발생하고 세이지는 사고로 죽는다. 경찰인 아버지를 존경했던 세이지의 아들 다미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이 되지만
[도서]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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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탐나는 책의 번역을 양보해주신 김상훈, 정소연, 최용준씨께 감사드립니다.” SF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노인의 전쟁>을 번역한 이수현씨를 포함한 네 번역자의 이름이 찍힌 책만 골라 읽어도 된다고 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사람들인데, 그들이 탐냈던 책이라니. 게다가 이 책 한국어판 판권 경쟁이 치열했음을 아는 입장에서는 이 번역본 출간이 더없이 반갑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재림이라는 칭찬이 헛되지 않은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은 최고의 페이지 터너.
존 페리는 75살 생일에 아내 무덤에 작별을 고한다. 75살 이상만 뽑는 군대, 우주개척방위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다. 입대와 동시에 지구에서는 사망자 처리가 된다. 그들 중 아무도 지구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페리는 다양한 삶을 살았던 여섯 노인들을 만나 ‘늙은 방귀쟁이’라는 모임을 꾸리는데 이들은 상상치 못했던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
[도서] SF 액션 멜로 유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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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앤드 스타스, 케이전 주얼, 조지언 크리스털. 디자이너 브랜드의 컬렉션이 아니다. 수박, 덩굴제비콩, 마늘 등에 붙은 종자의 이름이다. 탄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이 이름들에서 황홀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자연과 함께한 1년>을 추천하고 싶다. ‘한 자연주의자 가족이 보낸 풍요로운 한해살이 보고서’ 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도시에서 애팔래치아 산맥 아래의 농가로 이주를 결심한 바버라 킹솔버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책임감에서 결심한 귀농은, 엄청난 계획으로 시작된다. 직접 재배하거나 지역에서 공급이 가능한 식재료만 먹겠다는 원칙이다. 수확한 곳에서 구입하니 싱싱함은 기본이고, 이동거리가 줄어드니 화석연료의 소비도 적으며,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커진다는 올바른 이유에서다. 당연히 쉽지 않다. 진열된 상품을 고르던 즐거움을 포기하고 흙 묻은 당근을 시장 바닥에서 고르는 일은 낯설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재배와 수확이 불가능한 겨울에는 저장고의 말
[도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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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입양 충동 지수 ★★★★★
마지막 챕터에서 오열 지수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는 버려진 고양이었다. 1988년 1월 오하이오주 소도시 스펜서 도서관의 반납함 속에 버려진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도서관 사서 비키 마이런에게 구조됐다. 남편과 헤어진 뒤 반항적인 딸과 살던 비키와 도서관 운영진은 고양이를 동물보호센터에 보내는 대신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린다. 고양이를 도서관에서 입양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십진분류법을 창조한(그러니까 문헌정보학의 뉴턴쯤 되는) 멜빌 듀이와 ‘책 좀 더 읽어요!’라는 의미의 리드모어북스(Readmorebooks)를 합친 ‘듀이 리드모어북스’라는 이름을 고양이에게 지어줬다. 고양이는 이후 19년 동안 스펜스 도서관에서 살다가 2006년 12월 위종양으로 생애를 마쳤다. 듀이가 사망하자 <USA 투데이>와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250여개 언론이 추모기사를 냈고 지금도 스펜서 도서관 홈페이지(spencerlibr
[도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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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유아가 살해당해 계곡에 시체가 유기된다. 경찰이 용의자로 꼽은 사람은 아기의 엄마. 조사가 진행될수록 짙은 화장과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그녀는, 이웃 남자가 사건의 공범이라고 진술한다. 그리고 진위를 확인하는 경찰에게 남자의 아내는 남편과 아기의 엄마가 내연의 관계라고 말해 의심을 더한다. 한편 사건을 취재하던 주간지 기자는 우연히 그 남자가 16년 전 대학 야구부 윤간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인>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두개의 시간축에 놓인 별개의 두 사건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직조한 기묘한 소설이다. 소설은 기자의 입장에서 현재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좇는 듯 보이지만, 실은 과거의 비극으로 엮인 두 사람에게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공을 들인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16년 전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다. 그리고 악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두 사람은, 운명이라고밖에 할
[도서] 사요나라,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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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중반. 모두가 알튀세르의 책을 읽었다. 그 시절 과방에 놓여 있던 날적이를 다시 펴본다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분명하지만- 이를테면 “나는 알튀세르처럼 죽을 것이다”로 끝나던 그 일기들 말이다- 어쨌거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알튀세르가 한국 현대문화계에 내린 영향력 또한 깊고도 단단하다.
1993년 초반 발매되어 알튀세르 애호가들의 장서를 오랫동안 장식해온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새롭게 출간됐다. 이 책은 아내를 살해한 정신나간 철학자로서의 자기 정신분석이 가미된 자서전인 동시에 20세기 서구 지성사를 한번에 읽어내릴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초판에는 없었던 문헌자료와 색인이 꼼꼼하게 수록됐고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의 해설은 좋은 길잡이다. 알튀세르는 썼다.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
[도서] 다시 읽는 알튀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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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보(Garbo)라는 휴지통이 있다. 이름은 몰라도 사진으로 보면 누구나 알 만한 디자인의 이 휴지통의 이름은 당연하게도 배우 그레타 가르보에서 딴 것. 쓰레기라는 뜻의 영단어 ‘garbage’와 ‘가르보’(Garbo)의 유사성을 둔 말장난이다. 세계적으로 400만개 이상 팔렸으며 (아마 무단) 복제품도 그만큼이 팔려나갔을 이 우아한 곡선의 휴지통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이다. 카림 라시드는 휴지통과 소파에서부터 라 침발리사의 에스프레소 기계와 피아트 자동차의 내장 가구와 계기판, 아테네의 세미라미스 호텔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활약한다. 그 디자인 원칙으로 인생을 디자인하는 법을 책으로 썼다. 디자이너가 쓴 책답게 내지 디자인도 시선을 잡아끈다.
<나를 디자인하라>는 이메일 쓰기, 쇼핑, 섹스, 다이어트, 인간관계 등 우리가 살면서 행하고 접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그의 철학 중 하나인 ‘뺄셈에 의한
[도서] 유행보다 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