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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부터 롤링 스톤스까지, 영화로 듣는 음악 만찬
오정연 2007-08-08

8월9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물 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세 번째 출항을 앞두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음악영화제에서 시작하여 국내 최대의 휴양영화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제천영화제의 야심도 웬만큼 안정궤도에 오른 듯 보인다. 오는 8월9일부터 14일까지 계속될 영화와 음악의 만남은, 음악을 소재로 취하고 주제로 꼽은 23개국 71편의 초청작 상영과 25개팀 30여회의 공연으로 빼곡히 채워질 것이다.

총 9개의 섹션 중 메인에 해당하는 것은 음악의 활용이 돋보이는 극영화가 포진한 ‘시네 심포니’와 최신 음악다큐멘터리를 엄선한 ‘뮤직 인 사이트’일 것이다. 일렉트로니카 밴드 다프트 펑크가 연출한 SF실험영화 <다프트 펑크의 일렉트로마>, 토니 갓리프(<추방된 사람들>)의 신작 <트란실바니아> 등이 눈에 띄며, 바버라 코플(<할란 카운티 USA>)이 컨트리 가수 딕시 칙스의 3년을 담은 <딕시 칙스: 셧 업 앤 싱>를 비롯하여 조 스트러머(<클래시의 전설 조 스트러머>), 신중현(<신중현의 라스트 콘서트>), 픽시스(<픽시스-라우드콰이어트라우드>), 롤링 스톤스(<롤링 “라이크 어” 스톤>) 등 동서고금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맨 얼굴을 접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들은 웬만한 록페스티벌 부럽잖은 라인업을 자랑한다. 재즈를 테마로 한 작품을 선정한 ‘주제와 변주’에선 아무래도 다큐멘터리가 강세. 다양한 시기와 장르의 재즈 선율을 감상할 수 있으며,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같은 오랜 걸작을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감상할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음악영화 스페셜’은 <복면달호> <구미호 가족> <라디오 스타> <미녀는 괴로워> 등 유난히 음악영화가 많이 제작됐던 최근 한국 영화계를 반영한 섹션으로, “한국영화, 음악을 노래하다: 2007년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영화제 포럼과도 연결된다. 휴양길에서 온 가족이 함께할 만한 영화를 찾는다면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특색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교육용 애니메이션 <피콜로와 색소폰> 등이 포함된 ‘패밀리 페스트’ 섹션을 노려보자. 일본영화의 팬이거나, 영화음악가 지망생이라면 ‘일본 영화음악과의 만남’을 놓칠 수 없다. 이마무라 쇼헤이, 구로사와 아키라 등과 호흡을 맞췄던 이케베 신이치로,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하여 <남극일기> 등 한국영화까지 폭넓게 작업한 가와이 겐지, 히사이시 조, 간노 요코 등 일본 영화음악감독의 작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이 밖에도 <무녀도> <삼포가는 길> 등 한국 고전영화가 눈길을 끄는 ‘영화음악 회고전’도 빼놓을 수 없는데, 올해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상하는 최창권 음악감독의 작품을 모았다.

음악과 영화가 동등하게 어울리는 제천에서는 작은 부대행사 하나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F. W. 무르나우의 <유령의 성>과 함께하는 마누엘 궤칭의 라이브 연주 ‘시네마 콘서트’, 오후 8시부터 각종 뮤지션의 연주와 영화상영이 이어지는 ‘원 썸머 나잇’의 면면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이케베 신이치로, 조성우 등 일본과 한국의 영화음악가와 박찬욱 감독이 강사로 나선 제2기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가 행사기간 중 함께 진행된다(문의: www.jimff.or.kr, 02-925-2242, 043-646-2242).

<원스> Once/ 감독 존 카니/ 아일랜드/ 89분/ 드라마/ 개막작

한밤중, 더블린의 번화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남자에게 점차 다가가는 체코이민자 소녀. 남자가 실은 청소기 수리공임을 알게 된 소녀는 다음날 고장난 청소기를 끌고 남자를 찾는다. 생뚱맞게 시작한 둘의 인연은, 한 악기점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뤄진 합창으로 돈독해진다. 거리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씩씩한 미혼모 소녀는 남자로 하여금 음반을 만들도록 독려하지만 처지와 갈 길이 서로 다른 둘의 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일랜드의 넉넉한 풍경과 조우하는, 곳곳에 삽입된 담백한 음악이 일품이며, 남자의 곡에 가사를 붙이기 위해 여자가 음악을 들으며 밤거리를 걷는 장면 등 그 어떤 뮤직비디오보다 빛나는 영상에 눈과 귀가 즐겁다.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이며, 실제 아일랜드와 체코의 뮤지션인 두 남녀가 영화의 주연과 음악을 담당했다. target 포크록의 팬이라면, 아일랜드로 휴가를 앞두고 있다면, 음악적 교감을 믿는 당신이라면.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 영국, 헝가리/ 104분/ 드라마/ 폐막작

소박한 포크록으로 문을 연 제천영화제의 마지막은 베토벤의 교향곡이 웅장하게 장식한다. <카핑 베토벤>은 청력상실의 장애 속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합창>을 완성하고 그 초연을 지휘한 베토벤의 말년에 한 여성 작곡가 지망생이 함께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음악영화. 일견, 전기물의 새로운 시도라고 보이지만, <유로파 유로파> <비밀의 화원>의 여성감독 홀랜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성예술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던 지난 예술사에 대한 재기어린 반문인지도 모르겠다. 섹시한 대머리 배우의 대명사 에드 해리스은 베토벤이 살아온 듯한 외모와 연기를 선보이며, 베토벤과 교감하는 총명한 여인 안나를 연기한 다이앤 크루거의 아름다움은 출연작 중 최고로 꼽힐 만하다. <합창> 4악장의 다양한 모티브가 영화 곳곳에서 적절한 배경음악으로 활용된다. target 단돈 만원이면, <합창>의 초연장면을 큰 스크린, 풍부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다!

<제임스 블런트-코소보로의 귀환> James Blunt-Return to Kosovo/ 감독 스티븐 캔터/ 미국/ 50분/ 다큐멘터리/ 뮤직 인 사이트

“돌이킬 수 없도록 타버린 집들. 공기 속을 감도는 죽음의 냄새.” 영국의 뮤지션이자 국내에서는 CF 삽입곡으로 더욱 유명한 제임스 블런트의 <No Bravery>는 그가 직접 경험한 코소보의 비극을 담은 노래다. 군 복무 시절, 2년간 세르비아의 국경지대에 근무했던 그가 다시 그곳을 찾아 위문공연을 갖고 폐허가 복구된 곳곳을 돌아보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그의 공연장면부터 1999년의 앳된 블런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찍었던 화면까지 온갖 자료화면을 담고 있다. 말랑말랑한 사랑노래를 부르는 줄로만 알았던 팝스타의 생생한 내레이션으로 코소보사태의 의미와 NATO 활동의 영향, 알바니아의 평범한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듣는 기분이 묘하다. 그의 데뷔앨범에 담긴 거의 모든 노래의 공연 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target 두말 할 필요없이, 제임스 블런트의 팬, 혹은 각종 CF음악으로 익숙한 그의 진면모가 궁금하다면.

<몽마르트르 재즈 클럽-미소와 눈물 사이> Between a Smile and a Tear/ 감독 닐스 란 도키/ 덴마크/ 102분/ 다큐멘터리/ 주제와 변주

한때 ‘유럽 재즈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던 코펜하겐의 재즈클럽 몽마르트르. 인종차별도 없고, 젊었던 그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음악의 유토피아를 30년 만에 재연하기 위해 조니 그리핀, 투스 틸레망 등 왕년의 멤버들이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다. “살아남아 다시 만나고,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들의 재회부터, 역시나 유럽 곳곳에서 모여든 오랜 재즈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 비행기며 기차를 타고 각자의 장소로 돌아가기까지가 뮤지션인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의 마지막. 공항에서 모두와 헤어진 주인공이 자신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나며 말한다. “자, 자, 그럼 다음에 보자고.” 음악의 힘, 그리고 삶의 가능성에 대한 쿨한 낙관주의가 따스하다. 유럽 버전의, 다소 가벼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target 옛 친구가 만나고 싶어지거나, 유럽행 비행기를 끊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지도.

<생의 엘레지-로스트로포비치와 비쉬넵스카야> Elegy of Life/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 러시아/ 110분/ 다큐멘터리/ 뮤직 인 사이트

<러시아 방주>의 러닝타임 96분을 단 한컷으로, 에르미타주국립박물관을 유영하던 소쿠로프의 카메라가 20세기 러시아의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러시아 음악계의 대부·대모였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오페라 가수 비쉬넵스카야 커플을 3년간 쫓았다. 이들의 금혼식 피로연에서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각종 자료화면와 친밀한 인터뷰로 구성된다. 무소르그스키며 솔제니친 등과 각별했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쇼스타코비치는 말러를 존경했고, 프로코피에프는 차이코프스키를 사랑했지만 말러는 대단찮게 생각했다”며 당대 작곡가들과의 관계를 회상하고, 18살에 낳았던 첫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제 예순이 되었을 거라며 눈물짓는 비쉬넵스카야는 25년 전 노래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노래하고픈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올해 4월 세상을 떠난 로스트로포비치의 여전한 열정이 느껴지는 말년의 연주장면도 심금을 울린다. target 위대한 작곡가와 위대한 연주가가 살아숨쉬던 시기. 그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

<집시 캐러반> When the Road Bends/ 감독 재스민 델랄/ 미국/ 110분/ 다큐멘터리/ 뮤직 인 사이트

4개국 5개팀의 집시 밴드가 6주간 미국을 순회공연했고, 집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바 있는 감독의 카메라가 이를 따라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손이 빠른 바이올리니스트,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을 춰도 흥이 가실 줄 모르는 이들, 자신이 집시임을 알리고 국민가수로 활동한 유고의 가수, 세계에서 단 두명만이 출 수 있는 춤을 추는 인도의 여장남자 등 생김새도, 피부색도, 말도, 풍습도 제각각인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기에 이른다. 한서린 음악으로 가득한 음악다큐멘터리이자, 멈출 줄 모르는 여정을 더듬는 로드무비이며, 기나긴 역사 속에서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특정 국가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해온 이들의 현재를 통해 과거를 짐작해보는 인류학 연구자료이기도 하다. target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에, 그 영화의 음악과 정신에 매혹된 경험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

<체케랏쵸!!> Check It Out, Yo!!/ 감독 미야모토 리에코/ 일본/ 117분/ 코미디/ 시네 심포니

오키나와의 고등학교 졸업반, 단짝 친구 네명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구경한 힙합밴드의 영향으로, 악기를 사고, 연주법을 익혀서 자신들만의 밴드를 결성한다.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 여자아이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세명의 남자아이 사이엔 당연히 감정의 엇갈림이 존재할 것이고, 서툴게 시작된 밴드의 운명 역시 순탄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때문에, 이들은 성장할 것이고, 현재의 아픔마저 밝은 미래를 위한 전조가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할 줄 아는 아이들은 떠나가는 사랑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방법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힙합에서 많이 사용하는 문구를 일본식 발음 그대로 옮긴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명랑학원물을 연상시키는 만화적인 연출이 친근하고, 오키나와의 따스한 풍경은 여름 휴가의 완벽한 대용이 될 수 있겠다. target <린다 린다 린다>와 <스윙걸즈>, 혹은 <으랏차차 스모부>와 <워터 보이즈>. 일본 특유의 성장영화 애호가에게 권함.

<네버 세이 굿바이> Never Say Goodbye/ 감독 카란 조하르/ 인도/ 193분/ 드라마/ 시네 심포니

사고로 선수 생활을 그만둔 축구선수 데브와 패션잡지 편집장 리아, 유치원 교사 마야와 마냥 친구 같은 그녀의 남편 리시. 보수적인 발리우드가 결혼한 두 커플의 엇갈린 불륜을 다룬 것도 놀라운데, 온갖 우연과 필연의 힘으로 이 불륜을 기어이 응원하는 것도 충격적이다. 사소한 오해가 빚은 해프닝이 이어지고, 떠들썩한 군무와 애틋한 사랑의 아리아가 교차된 끝에 삶은 기적이요 진정한 사랑은 운명을 이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흥겹게 영화를 관람한 뒤, 사는 게 이렇기만 하다면야, 라며 낮은 한숨을 쉬게되는 것까지, 전형적인 발리우드 뮤지컬의 모든 요소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배합되어 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다시 만날 희망을 사라지게 하니까.” 발리우드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진정한 꿈의 공장인지도 모르겠다. target 발리우드의 흥행사 조하르 감독, 발리우드의 신 샤룩 칸과 아미타브 바흐찬, 기나긴 러닝타임… 당신이 발리우드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

<프롬 더 시> From the Sea/ 감독 미겔란소 프라도/ 스페인/ 75분/ 애니메이션/ 시네 심포니

바다 한가운데의 저택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여인은 뱃사람이자 화가인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녀의 사랑은 폭풍우에 휩쓸려 바닷속 세계를 방문한다. 곡예를 부리는 긴수염고래와 바다세계의 하늘을 나는 가오리와 나풀거리는 해파리밭과 인어들이 몰이사냥하는 뱀장어까지. 화가가 그려서 여인에게 선물했던 화폭에 담겼던 모든 이미지가 그의 눈앞에 다시 펼쳐진다. 어떤 프레임을 캡처해도 그대로 미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영화의 모든 이미지는 감독이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 채색한 결과물이고, 음악이 먼저였는지 그림이 먼저였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이미지와 호응하는 음악은 유려한 오케스트라로 연주된다. 사운드와 이미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변화무쌍하게 장르를 넘나드는 장관은, 그 어떤 내러티브보다 흥미진진하게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target 유럽풍, 혹은 유화 버전 <판타지아>. 자녀들에게 양질의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맛보게 하고픈, 센스있는 부모라면.

음악단편 초대전

음악을 소재로 한 국내외 단편을 한자리에 모은 이 섹션은 올해 신설됐다. <그녀의 핵주먹>(선지연),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정병길) 등 잘 알려진 국내단편 외에, 제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해외단편을 소개한다. 무료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기타 개인교습을 결심한 중년 사내가 결국 샹송 전곡을 기타로 반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를 다룬 <기타레슨>(The Guitar Lesson, 마르탱 릿)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무뚝뚝함이 일품이다. 아동 헤비메탈 그룹의 공연 준비과정을 담은 페이크다큐멘터리 <헤비메탈 주니어>(Heavy Metal Jr., 크리스 웨잇)의 능청스러움에는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의 영향일까. 19세기 후반, 14살에 유곽에 팔려서 18살에 첫사랑을 만나고 20살에 임신했다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 게이샤의 일생을 그린 <게이샤 엘레지>(Oiran Lyrics, 오가와 료스케)는 키치적인 뮤직비디오 형식을 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