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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오늘과 내일
냉동실에 처박혀 있던 딱딱한 식빵을 꺼내 토스터기에 넣었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데울 생각도 없었는데 충동적으로 토스터기에 넣어버린 작은 빵 한 조각. 집 안에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나는 약간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부드러운 빵을 한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기대. 어떤 충만한 기대감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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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소녀는 매번 하늘로 날아오르지
며칠 전 <마녀 배달부 키키>를 다시 봤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보았다. 다른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수십년이 흘렀고, 그사이에 몇번이나 반복해서 봤지만, 그래서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설레고 조마조마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이를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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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거짓말쟁이!’
<속죄>의 1부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나면 늘 마음이 미어진다. 진부하지만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극심한 슬픔이 느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거짓말쟁이’라는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매번 그렇다. 아마 그건 내가 브리오니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마음은, 이야기의 후반부 등장하는 지난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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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내가 있을 곳을 찾고 있다 찾을 것이다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13살이었고, 남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등록한 기초 수영반은 나보다 어린애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대부분 서로 이미 친구이거나, 그날 바로 친구가 됐다. 그때 나는 낯가림이 굉장히 심했고, 그래서 그들 중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심지어 진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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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기억
극장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라이온 킹>이다. 그날 영화를 보기 전에 엄마는 매표소 직원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 늦게 와서 앞부분을 놓쳤으니, 다음 상영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그 부분만 보고 나오면 안되냐는 것이었다. 마음씨 좋은 그 직원은 흔쾌히 허락해줬고(그때는 이런 일이 은근 많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는 약속대로 앞부분만 본 뒤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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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도서관에는 모비 딕이 있으니까
도서관에 간 지 오래되었다. 최근 부분적으로 ‘봉쇄’ 가 풀리긴 했지만, 도서관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아쉬운 상황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인지라,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하나둘 떠올리곤 한다. 그러니까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대부분 내 주변 사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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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무늬의 방향
나는 영화감독 사라 폴리가 어린 시절에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를 매우 좋아한다. 소설 <그레이스>의 판권을 사고 싶다는 그 당찬 포부가 단박에 거절당했다는 결말까지도. 17살의 소녀를 사로잡은 <그레이스>는 캐나다의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이 실화는 알면 알수록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실제로 마거
글: 강화길 │
일러스트레이션: EEWHA │
202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