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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아쉬운 건 무단결석 한번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무단결석보다는 연애를 못해봤다는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도 대개 그러했으니 크게 억울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십대에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을 겪어보지 못하고 그 시기를 넘어간 건 아무래도 인생에서 뭔가 손해를 본 것 같다.
무단결석은 그 다음으로 아쉬운 일이다. 학교와 집 밖에 모르고 매일이 꽉 짜여 있던 시절, 텅 비어버린 하루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일까. 우리 이후의 세대들을 보면 이른바 범생이든 날라리든 무단결석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무단결석이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1983년이던가. 어느 일요일을 기억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혜은이가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 밑에 공습경보를 알리는 자막이 깔렸다. 국민 여러분, 이 방송은 실제방
[내 인생의 영화] <브루스 브라더스> -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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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피아노 앞에, 남자는 그 옆 조그만 보조 의자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최초의 음악은, 남자가 짚어주고 여자가 알아듣는 이국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남자의 ‘다’는 다 다른데 여자는 그 ‘다’가 어떤 ‘다’인지 안다. 소리를 좇는 여자의 표정엔 꾸밈이 없다. 그녀가 건반을 짚기 전에 하는 일은 하나다. 남자의 음(音)을 집중해 듣는 것이다. 그녀는 ‘잘 치는’ 사람이지만 그전에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가 무사히 끝날 것이라 예감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악기점 주인이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런 순간에 주어지는 쾌락을 고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환호’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없어도 좋을 더 많은 것들 역시 없다. 악기점 주인은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를 딱 한번 쳐다본다. 그것도 잠깐, 노인 특유의 완고한 표정으로 흘깃. 나는 악기점 주인이 고개 드는 순간 이 영
[냉정과 열정 사이] 짧지만 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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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곳엔 머물 수 없다.” <무시시>의 오다기리 조는 말한다. 벌레로 아파하는 사람을 치유하며, 산에서 산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떠도는 무시시는 기이하게 변해가는 자연에 몸을 맡긴다. 우루시바라 유키가 만들고,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이 세계에서 그는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남자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벌레를 보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운명의 무게로 짊어진 존재. 영화는 이 불가사의함의 화자로 오다기리 조를 택했다. 수많은 영화와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는 배우 오다기리 조는 절대적인 고독, 무(無)로 돌아가는 여정에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어려서부터 영화관을 탁아소 삼아 지냈고, 미국에서 홀로 2년간 유학했으며, 존 카사베츠와 짐 자무시의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 그는 연극 <드림 오브 패션>으로 데뷔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에 출연했으며,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
[오다기리 조] 고독한 여행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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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이 불러서 유명해진 옛 블루스 <제방이 무너지면>은 1927년의 미시시피 대홍수를 읊은 노래다. 노래의 한 구절은 이렇다. ‘비가 쏟아져 제방이 무너지면 난 머물 곳이 없네. 만약 제방이 무너지면, 어머니, 피난해야 돼요.’ 100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벌어졌다. 2005년 8월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제방이 터지는 바람에 뉴올리언스의 80%는 물에 잠기게 된다. <제방이 무너지면>에서 제목을 딴 <제방이 무너졌을 때>는 폭풍과 홍수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은 뉴올리언스 시민의 비극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대부분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기억하고 있는 카트리나의 참상이 기실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진 죄악임을 밝히고자 한다. 스파이크 리는 자기 목소리를 뒤로 접은 채, 170여명의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증언을 빌려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자를 관객이 심판하는 법정으로 불러내는 작업을 펼친다. 19
허리케인이 드러낸 미국의 비극, <제방이 무너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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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색, 계>의개봉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배우 탕웨이 인터뷰 영상!!
1942년 상하이, 스파이가 되어야만 했던 여인과 그녀의 표적이 된 남자의 슬픈 사랑을 다른 에로틱 멜로 <색, 계>
영화 속 왕위민과 "이"선생과의 사랑에 관한 배우 탕웨이의 인터뷰를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색, 계> 탕웨이 “당신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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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개봉하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블랙달리아>
실제 1947년 미국 L.A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무명 여배우 살인사건을 토대로
재구성 된 영화로 '조쉬 하트넷'과 '스칼렛 요한슨' 이 주연을 맡았다.
조쉬 하트넷, 스칼렛 요한슨의 인터뷰와 영화 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비롯해
촬영 현장 메이킹 영상까지, 이 모든것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버튼을 클릭해주세요
[개봉작 NEW] 충격적인 여배우 살인사건! <블랙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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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배우 OOO는 이번에 차를 팔았다면서?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 고급 세단 뽑았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야. 이제 인기도 시들하고 OOO도 호시절은 다 갔구먼.” “근데 말야. 신인배우 XXX는 출연료도 변변찮은데 이번에 외제차를 샀다면서. 어찌 된 일이야?” “맹추. 그걸 몰라. 재벌 △△△가 챙겨준 거라잖아. 그러니까 세상이 요 모양이지. 이번에 ◇◇영화사에서 신인배우 오디션을 열었는데 말야. 별로 신통치도 않는 나체사진까지 동봉한 처자도 있다더구먼.” “청운의 꿈인지 허영의 거품인지 모르겠구먼.” “영화사들마다 언젠가 자가용 타고 돌아오겠다며 집 뛰쳐나간 딸을 찾겠다고 헤매는 부모들 천지라잖아.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중요한 시절이라니까, 지금은.”
‘앞공론 뒷공론’이니 ‘동서남북’이니 하는 1970년의 각종 영화잡지 뒷담화 꼭지들을 뒤적이다 보면 영화배우에 대한 동경이 여전했음을 알 수 있다. 울면 울고 웃기면 웃던
[한국영화 후면비사] 차를 보면 배우의 인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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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여자의 모자를 보고, 끊어진 밧줄을 보고, 이윽고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의 시신을 본다. 패닉에 빠진 나무꾼은 한달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하고, 이로써 종잡을 수 없는 해괴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의 진술은 모두 확보됐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그들의 진술은 크게 엇갈리며,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네 사람 중 진실을 말하는 것은 누구일까?
네개의 시각
체포된 도적 타조마루가 입을 연다. 사무라이를 기습해 묶어놓고 그의 아내를 겁탈했다. 처음에는 무섭게 저항하던 여자가 곧 자신과의 관계를 즐기는 듯했다. 자리를 떠나려는데 여자가 “자신의 수치를 두 남자가 알게 할 수는 없다”며, 한 사람이 죽기 위해 둘이 결투를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스물세합을 겨룬 끝에 사무라이를 살해했으나, 여자는 그 사이에 도망가고 없었다. 그도 여자 찾는 것을 포기한다. “그녀도 다른 여자와 다를 게 없었다.”
절에 숨어 있다 끌려온
[진중권의 이매진] 최종적 진리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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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허문영 평론가 사이에 마련된 정성일 평론가의 자리에 별안간 성은 같으나 이름이 다른 자가 등장한 것에 독자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가 숨겨놓은 필명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니 잠시 진정하시길 빈다. 소인, 잠시 지나가는 객일 뿐이다.
가끔 이견이 없지 않았으나 평소 정성일의 글에 취해 사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리에서 나의 소견을 쓰는 것이 과연 그의 통찰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가 잠시 이 자리를 맡아야만 하고 우연히 그게 나의 역할이 된 것이라면 한 가지 다짐은 하고 싶다. 김소영, 허문영 두 훌륭한 평론가가 사유의 숨을 더 깊게 쉴 수 있도록 한주의 시간을 벌어주는 징검다리로 혹은 덧붙여 가끔은 쓸모있는 보론과 이견도 제시할 줄 아는 첨언자로 노력하며 정성일 평론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자 한다. 갈수록 건기와 우기만 있다는 사계의 무딤 속에서 가을용 멜로 장르로 우리를 찾은 두편의 한국영화에
[전영객잔] 신파의 눈물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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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탄력적인 이야기가 전개됐다. 의문의 죽음, 내의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과학수사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단서들 그리고 죽음의 주위를 둘러싸고 모여드는 궁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지닌 의문의 파편들. <궁녀>가 궁중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그 베일을 벗었다. 최근 유행하는 공간(궁, 병원 등)을 중심으로 한 역사추리 혹은 역사기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 주체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타자들을 소환시킴으로써 영화 <궁녀>는 대중의 산뜻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권력을 중심으로 한 어전이 아니라 전문성의 영역인 궁녀들의 일상적 공간에 주목함으로써 전에는 몰랐던 궁의 은밀한 공간들이 드러났다. 카메라는 궁궐의 각 모서리와 숨은 방들과 지하를 누비며 미시적인 공간들을 조명했고, 더불어 조선시대 궁녀들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발견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물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
[영화읽기] 궁녀들의 억압된 핏빛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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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소설은 왜 쓸까? 진실로, 왜!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도리스 레싱은 <황금 노트북>이 최초 출간된 지 약 십년 뒤인 1971년에 서문을 추가한 <황금 노트북> 판본에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소설에 쏟아진 수많은 말에 대한 답변인 그 글에서 레싱은 사회가 겪고 있는 대변동 속에서 여성 해방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가에 대해 말한다. 안나 울프라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자 안나가 쓰는 이야기를 담은 <황금 노트북>은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세상의 균열을 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황금 노트북>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바라보는, 그리고 기록하는 한 여자의 의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는 꽤 성공한 작가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녀가 친구 몰리와 한 방에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 <황금 노트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