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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 전혀 다르더라”
지난 3일 (주)시네마 서비스의 강우석 감독과 (주)김종학 프로덕션의 김종학 PD는 방송과 영화간의 긴밀한 교류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다. 시네마 서비스가 자본을 유치, 투자해서 김종학 프로덕션과 영화뿐 아니라 TV 프로그램도 함께 제작해 나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김종학 PD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굵직굵직한 대작들을 연출해 내면서 충무로가 탐내는 ‘1순위’ TV PD로 꼽혔지만 제이콤으로 독립하면서 기획한 창립작 <인샬라>가 모로코 올 로케이션과 15억원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면서 준비중이던 시나리오 <쿠테타>도 무기한 보류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TV 시리즈 <백야 3.98>과 <고스트> 등도 러시아 촬영과 특수효과 촬영이라는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방송사의 품을 떠난 뒤 이어졌던 실패는 거액의 수업료를 지불한 훌륭
영화로 간 PD들, 무엇이 문제인가 [2] - 김종학 PD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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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10년, PD로 입봉한 지는 6년차 되는 드라마국 PD ‘예술하네’씨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보면 점심시간이 오고 이럭저럭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다가 퇴근을 한다. 1년에 만들어지는 드라마라고 해봐야 6개월 단위의 주말연속극 2편, 월·화 혹은 수·목 미니시리즈 4편씩,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 단막극 통틀어 봐야 스무개도 안 되는 편수에 비해 들이미는 숟가락 수는 너무 많지, 그렇다고 어디 AD급으로 공동 연출하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설상가상으로 외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나마 몇편 안 되는 굵직 굵직한 것들은 어느새 밖으로 나간 유명세 있는 선배님들 차지고보니 1년 아니 2년 동안 연출 한번 못해보고 나이만 먹고 있는 것이다.
아! 한때 그는 얼마나 잘 나갔던가? 어릴 땐 신동소리 들으며 크고, 좋은 대학 들어가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 그 힘든 ‘언론고시’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의 청사진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일상에
영화로 간 PD들, 무엇이 문제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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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잔혹이야기>(菁春殘酷物語)1960년
부모를 버린 청춘남녀의 파멸기를 파격적이고도 역동적인 형식에 담아낸 오시마의 출세작. 오시마 자신이 뽑은 대표작으로, 젊음·폭력·섹스라는 오시마 평생의 소재 속에 정치적 근본주의가 은밀히 잠복해 있다. 50년대의 열혈 학생운동가였고 지금은 불법 낙태수술로 먹고사는 선배 의사의 더러운 산부인과 병원. 낙태수술을 받고 탈진해 누워 있는 여주인공 옆에서 남자주인공은 사과를 질겅대고 있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번진다. 이 한 시퀀스만으로도, 오시마는 전후 일본사회의 불모성과 일본공산당이 주도한 50년대 좌파운동의 실패, 살부(殺父)를 감행한 청춘남녀의 불안과 비애를 단숨에 드러낸다.
<일본의 밤과 안개>(日本の夜と霧)1960년
정치노선에 관한 격론이 이야기를 대체한 진귀한 정치영화. 스탈리니즘에 사로잡힌 50년대 학생운동과 일본공산당의 몽매성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오시마의 신좌파 정치노선이 전경화한다. 더욱 놀라운
오시마 나기사 [2] - 대표작 5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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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기껏 일찍 죽는 것 정도가 아닐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뉴웨이브는 아비의 집을 불태우고 거리에 나선 아이들의 몫이었다. 악동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는 묘굴꾼’이란 비난 속에 프랑스 평단을 들쑤셔 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젊은 감독들은 아버지의 영화의 죽음을 고한 ‘오버하우젠 선언’을 내놓았다. 전후 일본영화계 최대의 문제아 오시마 나기사(1932∼ )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27살의 나이에 데뷔하는 진기록을 세우더니 “일본영화는 없다”는 도발적 발언으로 일본영화계를 뒤집어 놓았다. 오시마도 아비에 대한 저주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1973년에 쓴 에세이 <내 아버지의 부재-내 실존의 결정적 요소>는 이렇게 이어진다.
“내 아버지는 내가 6살에 돌아가셨다. 난 어머니라는 존재의 보호막이 싫었다. 그게 내 삶을 평범하게 만들었다. 내
오시마 나기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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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사탄의 치명적 유혹
악마가 탐내는 남자의 몸이 그리스 조각상 같은 완벽한 신체는 아니다. 뭇 여성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화려한 외모나 싱그러운 향기 물씬 피어나는 젊음은 사탄의 노리갯감으론 적당해도 어둠의 마력을 보여주기엔 부족하다. <이스트윅의 악녀들>의 잭 니콜슨, <데블스 에드버킷>의 알 파치노를 떠올린다면 <엔드 오브 데이즈>의 사탄으로 가브리엘 번을 택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귀족다운 우아한 옷차림과 당당함에 험한 과거가 새겨 있는 이마의 주름, 이지적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그의 마음에 연옥이 머물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날뛰지 않고도 분노와 격정을 보여주는 드문 배우다. 미국에서 찍은 첫 영화 <밀러스 크로싱>은 이후 그가 보여줄 연기의 스펙트럼을 하나의 프리즘처럼 보여준다. 갱스터와 필름누아르의 시공간에서 가브리엘 번은 보스의 정부와 치명적 관계를 맺는다. 걷잡을 수 없는 운명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5] - 가브리엘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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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악취를 맡아볼래?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성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모르는 척 눈감아버리는 타협? 아니면 지배하는 자들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진입하려는 욕망? 이 두 가지 선택을 모두 거부한다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을 날겠다는 피터팬의 순진무구한 꿈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에 대한 환멸 때문에 자신의 키를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고정시킨 <양철북>의 난쟁이, 절망하는 오스카에 가깝다. 세살 때 계단에서 굴러떨어짐으로써 스스로 성장을 포기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른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던 오스카. 젊은 시절, 난폭하기로 이름 높았던 숀 펜(39)의 거친 기질이나 기존의 질서를 거스르면서 나가는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 오스카를 연상시킨다. 숀 펜은 피터팬처럼 아버지들의 세계를 떠나버리지 않는다. 그는 오스카처럼 알 것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버지의 땅, 미국을 응시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 권력과 이해관계, 소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4] - 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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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함이 그들 정의로 몰아넣었다
<LA컨피덴셜>은 흐트러진 미궁의 세계를 그려내는 영화다. 하나의 죽음은 또다른 죽음과 맞물리고, 조각난 사건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타락을 각기 다른 형태로 반사한다. 길을 찾으려 애써 보아야 소용없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환한 햇살이 어떤 어둠의 흔적도 지워 버리는, 이곳은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어둠만이 존재하는 고담시의 지배자 잭 니콜슨(<배트맨>)도 이 눈부신 도시에서는 질척거리는 욕정과 끈끈한 먹이사슬의 고리 속에 통로를 놓치고 만다(<차이나타운>). 알 수 없는 LA의 마력은 야수 같은 니콜슨의 본능조차 흡수해 버린다.
형사 버드 화이트(러셀 크로)가 음모에 휘말린 곳은 하필이면 이런 도시다. 모든 퍼즐에는 해답이 있고 모든 미로에는 출구가 있다지만, LA에서는 그런 원칙이 통하질 않는다. 그저 몸을 내맡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여배우 베로니카 레이크를 닮은 금발의 창녀와 마약에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3] - 러셀 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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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복기를 거치고 바이러스가 눈을 뜬다
죄악의 땅. 그늘과 습기로 가득 찬 이곳에 희망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다. 아이를 낳는 일마저 또 하나의 형벌이 될 뿐인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주 가까운 어느 미래의 묵시록처럼 보이는 영화 <쎄븐>은 이 질문에 ‘정화’(淨化)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살인을 통한 정화가 시작된다. 세상을 파멸시킬 일곱 가지 죄악에 차례로 징벌을 가하는 살인자. 그가 바로 케빈 스페이시(40)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얼굴로 도시의 폐부에 은밀하게 스며들고 끝내 그 자신마저 제물로 삼아 도시를 청소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냉혹함보다 섬뜩한 것은 끝내 흔들리지 않는 표정없는 얼굴이었다. 모든 감정이 지워진 스페이시의 눈동자만큼 불가해한 악(惡)이 또 있었을까. 경찰청에 들어섰을 때는 누구도 그 살인의 그림자를 알아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살인자라는 단 한마디 외침으로 그는 죽음의 냉기와 동일한 존재가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2] - 케빈 스페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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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아래 앙상하게 윤곽을 드러낸 도심의 밤, 범죄와 음모가 스멀거리는 문명의 그늘, 자신 외에는 믿을 것 없는 현실의 생존법칙 앞에 선 삐딱한 사내들.
험프리 보가트의 찌푸린 양미간과 잭 니콜슨의 음울한 표정의 시대는 갔어도 도심의 뒷골목, 누아르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만물의 법칙이 그러하듯, 누아르 세계에도 세대교체가 있다.
보가트의 후예들, 할리우드를 점령하다
한적한 L.A 교외의 폐모텔,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가르며 한대의 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먼저 도착해 있던 사내에게 말을 건네고, 서로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두 사람은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깨닫는다. 연관이 없어 뵈는 일련의 살인사건이 거액의 마약을 노린 상사의 음모 때문임을 알게 된 두 형사 버드 화이트와 에드 엑슬리. 자리를 미처 피하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는 불빛이 다가오고, 총을 집어든 두 사람은 폐건물의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인다.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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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영화진흥정책이 엉뚱한 구설에 올랐다. 이 진흥정책은 영진위에서 상당한 공을 들여 만들었고, 내용도 비교적 내실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지만 총선용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
총선을 불과 보름 남짓 앞둔 지난 3월30일 문화부가 진흥정책을 발표하면서 영진위 명의와 나란히 문화부 이름을 걸고, 문화부에서 따로 보도자료까지 내 ‘치적’을 강조하는 것이 어색했다. 아무리 영진위가 문화부의 우산 아래 있지만 자율성을 인정한다면 모두 영진위에 맡기는 게 보기에도 좋을 듯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최근에는 서영훈 민주당 대표 등 당지도부가 서울영상벤처센터를 방문해 이미 발표한 영화진흥정책을 재탕해 공약이라고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황만으로 총선용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영진위가 공전을 거듭하다 새로 위원을 위촉해서 재출범한 과정과 위원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감안하면 그들의 순수한 동기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화부가 굳이 이름을
[충무로는 통화중] 영화진흥정책, 혹시 총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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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자폐 기질이 필요하다.” 외화번역을 하는 김은주(40)씨는 “자기와의 싸움”을 위해 작업할 땐 철저하게 외벽을 두른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정확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최대한 압축해서 뽑아내고 재미있게 대사를 튀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빠른 대사나 화자가 겹치거나 하는 부분들은 관객이 즉각적으로 화면과 자막을 연결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내용이 복잡하거나 상영시간이 긴 작품을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1주일 정도. 얼마 전 자막시사까지 마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처럼 미식축구의 세계를 파고든 영화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수다. 이 방면에 문외한인 그는 전문적인 용어와 게임 룰을 파악하려고 풋볼협회를 찾아야 했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번갈아 작업하다 보면 자칫 타깃을 놓칠 수도 있다. 멕 라이언이 나오는 <지금은 통화중>은 최대한 가볍고, 경쾌하고, 위트있게 말을 비틀어야
글자 수 헤는 밤과 낮, 외화번역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