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사상 가장 기억될 만한 유혹신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졸업>(1967) 중 순진한 청년 더스틴 호프먼 앞에서 감질나게 스타킹을 벗어내리던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모습을 기억하는지. 관객은 그녀가 완전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오던 빠른 컷이 스쳐 지나간 뒤에야 그간 참아왔던 숨을 내쉬었다. 최근 캐서린 터너가 런던의 한 무대에서 45살의 중후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누드로 <졸업>의 그 숨막히던 장면을 연기해서 화제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욕실에서 나온 뒤에도 편집이 가해지지 않는 라이브 쇼라는 데 있다. 터너는 1980년 <보디 히트>의 유혹녀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캐서린 터너, 완전 누드 연기 화제
-
영화평론가 허창(본명 허창도) 선생이 3월27일 새벽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73살. 1927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그는 56년 <국제신보> 문화부 영화담당 기자를 시작으로 그동안 <부산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58년 <부산일보>가 주관하는 부일영화상 제정에 힘썼고 65년 이영일, 변인식, 김종원씨 등과 함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만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95년에는 유현목, 임권택 감독과 함께 ‘영화정의실천을 위한 모임’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빈소를 찾은 영화인들은 선생이 별세한 “3월27일은 자신이 산파 노릇을 ‘부일영화상’이 탄생한 날과 같은 날”이라며 애석해했다. 동료·후배 평론가들은 그를 두고 “강직하고 평생을 비타협적인 자세로 평론에 임했다”고 회고했다. 선생과 함께 기자활동을 했던 이목우 전 <부산일보> 기자는 <부산일보>에 쓴 그를 기리는 조문에서 “굽힐 줄 모르시던 당
영화평론가 허창 별세
-
참 평범했다. 하루에 여러 번 길에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갈 법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외모. 첫인상이 그렇다는 얘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튀지 않는 것은 뭐든 평가절하당하는 개성시대니 만큼, 불쾌하게 해석될 여지는 충분했다. “그렇죠.” 김유석의 얼굴에 여린 미소가 떴다. “그 평범함 속에 에너지가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려고요. 한석규 선배나 설경구씨, 다 그런 배우들 아닌가요.” 그는 이제껏 그 평범함 속에 묻어둔 비범한 에너지를 발휘할 기회를 꼭 두번 만났다. 나른하고 권태로운 일상에 날아든 여대생에게서 욕망의 출구를 찾으려던 <강원도의 힘>의 앳된 경찰이었다가, <섬>에선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고 도망쳐 들어온 저수지에서 또다른 여자를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보니,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가련한 인간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을 담아낸 연기에, 그가 말하는 평범함의 미덕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유학파 배우’라고도 부른다. “
평범함의 힘, <강원도의 힘> <섬>의 김유석
-
고무 호스의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무지개 속에 선 듯 빛나는 로리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그늘로 서른두살의 남자를 끌어들이는 <연인>의 소녀, 혹은 차갑게 푸른 눈동자로 채 자라지 못한 육체를 덮어 버리는 <택시 드라이버>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 이들은 조금만 무게를 가해도 짓눌려 버릴 것처럼 어려 보이지만, 이 아이들 앞에서 부서지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스무살도 되지 않은 이 소녀들에게서 어른들이 얻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무엇이 잊고 있던 욕망을 일으켜세우고 다시 한번 갈증 속에 버려지게 했을까. 놓쳐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은밀한 저항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는 다소 다른 의미를 담는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 버냄을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는 그 답을 짐작하는 듯하다. 장미꽃잎으로 몸을 감싼 미나 수바리(21). 그 꽃잎들이 하나씩
아, 아메리칸, 아메리칸,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
-
-
올 아카데미가 캐나다를 화나게 했다면, 그건 <사우스 파크>의 주제가 <블레임 캐나다>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전세계에 중계 방송되는 시상식에서 ‘타도, 캐나다’가 울려 퍼진대도 여유롭게 웃어 넘기던 그들이 정작 참기 힘들었던 건, 그들의 ‘국민감독’ 노만 주이슨(Norman Jewison·73)이 홀대받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남우주연상(덴젤 워싱턴) 후보 한 자리만 배당받았고, 그나마도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꼭 그 이상의 상복을 누려야 할 영화는 아니지만, 편견에 희생돼 살인자의 누명을 쓴 흑인 복서의 이야기가 전하는 진한 감동만큼은 ‘국보급’이라는 사실을 캐나다 밖에서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노만 주이슨 감독은 50년대에 영국 <BBC>, 미국 <CBS>, 캐나다 국영 방송사를 거치며, 방송 작가와 드라마 연출가로 활동했는데, 이때 해리 벨
캐나다 국민감독, <허리케인 카터>의 노만 주이슨
-
연기 못한 거, 답답한 거, 좋아
이 | 왜 감독 역할에 나를, 또 거짓말하는 발레리나로 심은하씨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변 | 스케줄이 비는 배우가 둘밖에 없어서. (웃음) 캐스팅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영화감독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 영화감독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형성들, 규정들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으니까. 영화감독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 하고 담배도 피워야 되고 하는 식의.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떤 감독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정재씨도 배우를 하지 않고 연출부에 들어갔으면 감독이 됐을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하는 게 중요했다. 이정재씨의 출연작들을 구해 보고,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 만나서 얘기 듣고, 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확실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그렇다면 극중의 은석 이야기도 어디까지 가야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감도 잡혔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그려놨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
변혁 vs 이정재 [2]
-
다큐|픽션, 경계의 영화 <인터뷰>
<인터뷰>는 멜로드라마이되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이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고,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되 또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는 하나로 매듭지어 버리기 곤란하게 풍성한 결을 지닌 영화다.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는 카메라란 영화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다. 변혁 감독은 또, 심은하 이정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으면서도 스크린에서 그들의 스펙터클을 지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주류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인터뷰>는 따라서, 배우 이정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극중 감독 이정재가 실제 감독 변혁을 인터뷰했다. 극중 감독은 성실히 물었고, 실제 감독은 골똘히 대답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나누며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거리들을 길
변혁 vs 이정재 [1]
-
미국적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된다
“뷰티-풀(beauty-full) 나이트.” 새 천년을 맞은 오스카의 선택을 한마디로 요약한 미국 현지 언론의 평대로,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메리칸 뷰티>로 가득한’ 밤이었다. 현지시각으로 3월26일 저녁, LA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뷰티>는 후보에 오른 8개 부문 가운데 5개 부문을 수상했다. 트로피 숫자만 따지자면 지난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7개에 못 미치고, 재작년 <타이타닉>의 11개에는 절반도 안 되지만,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까지 노른자위를 휩쓸었다는 점에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성적이다. 수상부문이 주요부문들이라 후반부에 몰리는 바람에 3시간 가까이 박수치기에 바빴던 <아메리칸 뷰티>의 배우와 제작진들은, 촬영상을 필두로 작품상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의 하이라이트를 거의 독식했다.
익숙한 소재, 예측된 결과
남우
제72회 아카데미상 [1] - 수상작 리스트
-
‘꾼’의 기질에서 처연한 미학이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평전>
<반칙왕> 크랭크인 전날, 연출부 제작부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추렸다.
아무 생각없이 가방을 싸다가 “근데 가방을 왜 싸지?” 했다.
지방도 아니고 숙박하는 것도 아닌데. 싸다말고 가방을 골똘히 쳐다보니까 가방이 날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쌀 거야? 말 거야? 이 변덕아.”
그러다 이왕 싸기 시작한거 간편하게 시나리오랑 콘티만이라도 넣어 가기로 했다가…. 2분도 지나기 전에 이것저것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C.D를 넣다 꺼냈다, 긴팔 재킷을 넣다 뺐다 갈팡질팡이었다. 매사 이렇다.
시나리오와 콘티마저도 넣다 꺼냈다 하는데 유독 가방 안쪽 한구석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차 뒷자리에 자리잡은 아이들처럼 딱 버티고 있는 두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과 <체 게바라&g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9] - <체 게바라평전>
-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심장이다’ 라는 말이 있다. 영화사는 다큐멘터리로부터 시작되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진실을 찾는 카메라의 역할을 다큐멘터리는 훌륭히 수행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획일화된 이른바 문화영화나 TV다큐멘터리만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극장용 다큐멘터리는 아예 그 전통이 부재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문화의 부재는 한국영화문화의 폐쇄성을 드러내는 아주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90년대부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길을 찾는 것이 아닌) 제작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푸른영상이나 보임이 바로 그러한 집단으로, 그들은 사막에 싹을 틔우는 것과도 같은 무모한 그러나 의미있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최근에 변영주 감독은 만 7년여에 걸친 기나긴 하나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8] -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
-
시네필, 작가를 만나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히치콕(1899∼1980)은 이제 신화다. 살찐 이중턱 위로 삐죽 나온 아랫입술과 불룩 나온 배가 그려내는 특유의 실루엣으로 한눈에 그임을 알아보게 하는 이 감독이 영화사에서 거의 신격화된 존재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지난해 전세계 영화계가 이 거장의 탄생 100주년을 ‘경건하게’ 기념한 ‘사건’이다. 세계의 영화인들은 20세기, 즉 영화의 세기를 히치콕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고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함으로써 보낸 것이다. 영화탄생 100주년과 맞먹을 정도로 자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인이 도대체 또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 히치콕은 중고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의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다가왔다. 당시 나는 앨프리드 히치콕이란 이름을 ‘서스펜스의 거장’ 정도로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그가 자기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독특한 감독이며, 한 장면 한 장면 손수 스토리보드를 그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7] - <히치콕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