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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에서 생긴 일
시드니 루멧의 <영화 만들기>
연극의 유산과 텔레비전의 현장성을 잘 결합시킨 시드니 루멧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퍽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 못 된다. 주목할 만한 데뷔작 <12인의 노한 사나이>나 <전당포> 같은 고전이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았을뿐더러, 명작 <네트워크>도 비디오숍에서 금방 찾기 힘들다. 이런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시드니 루멧이 자신의 영화제작과정을 토대로 쓴 <영화 만들기>는 얼핏 흥미가 덜할 수도 있다. 오히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풀이한 다른 이론서가 도움이 클지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영화 만들기>를 추천하는 것은 이 책이 먼저 연출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이면서도 동시에 영화에 이론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드니 루멧은 거장답게 자신의 특수한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6] - <영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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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비평에 관한 ABC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를 강의를 통해 배운 적은 없었다. 학부에선 생물학을 공부했고, 대학다닐 때 유일한 홍일점 야구선수로 뽀얀 흙먼지 뒤집어쓰고 놀기에 바빴으니, 영화에 관한한 무슨 교양강좌나 무슨 아카데미, 무슨 무슨 학교에조차 얼굴을 들이민 적이 없는 셈이다. 가끔 영화 강의를 하러 가는 곳에 이력서 제출이나 영화에 관한 경력을 물어보면, 그냥 ‘<씨네 21> 평론상을 수상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오히려 그쪽에서 머쓱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긴 자기가 무슨 쿠엔틴 타란티노라고.
실제로 인생의 많은 것들은 환자한테서 배웠다. 무엇이 정말 잔인한 것인지 무엇이 진짜 슬픈 것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영혼이 부서진 정신과 환자의 그림은 놀랍도록 영화의 한 장면과 닮아 있다. 까만 크레파스로 사람들이 둥글게 손을 맞잡고 있는 말기 정신분열증 환자의 그림에서 프에블로 인디언족의 벽화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3] -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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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무엇을 하는가
앙드레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영화 책은 별로 기억이 없다. 대학 초년생 시절, 그 당시로는 영화 책이 가장 많았던 서강대 도서관에 여름방학 동안에 죽치고 앉아서 잉마르 베리만의 비평서나 피터 울른의 <영화의 기호와 의미>를 뜻도 모르면서 붙잡고 있기도 했지만 결국 다 읽는 데는 실패했다. 그보다는 옛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월간지 <영화>의 번역 글을 읽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행간에 새마을운동 구호가 적혀 있고 박정희 대통령 어록도 심심치 않게 실려 있던 70년대 유신시대의 그 월간지는 영화가 한국에서 얼마나 구박받던 매체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물이지만 매 호마다 꼭 실리는 번역 글은 재미있었다. 하길종 감독이 번역했던 ‘영화는 메타포가 아니다’라는 잉마르 베리만의 에세이, 배창호 감독이 번역한, ‘70년대 미국영화의 자식들 세대’ 감독의 스타일에 관한 리처드 제임슨의 ‘스타일 대 스타일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2] - <영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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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전>에서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까지
8명의 영화인이 말하는 내 인생의 영화책
“관객의 지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작품이 주는 충격을 최대한 연장시키는 것(앙드레 바쟁)”이 비평가의 지고한 임무라면, 영화감독은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사람”을 꿈꾸는 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이런 염원을 품도록 한 영감의 태반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실린 8명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첫 번째로 꼽는다. 현재 감독과 비평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작은 영화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상이한 사유의 궤적을 거쳐 지금 이곳에 이르렀으며, 그 여정에서 평생 가슴에 품을 만한 책 한권씩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영화사전>처럼 영화를 ‘넓게’ 보도록 안내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히치콕과의 대화>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처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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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지금부터 카메라와 마이크를 로스앤젤레스 시라인 오디토리엄으로 옮겨, 제72회 아카데미 타이틀매치 실황을 독점 생중계해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노련한 사회자 빌리 크리스털이 링에 올라와 심사위원을 소개하고 있군요. 네 그런데, 웬 뜰채를 들고 나왔을까요?
해설: 네, 이탈리아에서 실어온 팔팔한 꼴뚜기 한마리 때문이죠. 지난해에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올해에는 시상자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행: 이제 막 주요 부문의 시상이 시작되고 있네요. 여우주연상 부문에서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왱크군이, 아니 힐러리양이 수상했습니다. 남자로 출연해서 여우주연상을 타다니, 무척 의외지요.
해설: 93년에는 <크라잉 게임>의 여장남자 가수, 제이 데이비슨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죠. 동성애에 적대적인 아카데미의 결정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강력한 상대인 아네트 베닝은 임신한 몸으로 나와 ‘여자면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아카데미 타이틀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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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대중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개명되었다.)
1985년 영화법 개정으로 극영화 제작은 누구나 신고만 하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우후죽순처럼 영화제작사들이 등장했다. 24개의 영화사만이 영화제작을 할 수 있었던 과거 독과점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이태원 사장의 도움과 배려로 태흥영화사에서 일했던 이두용 감독과 나는 비슷 한 시기에 각기 독립하여 프로덕션을 만들었다. 한국 영화제작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산업이 대기업화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새로 등장한 군소 프로덕션들도 기존의 독과점의 위세를 떨쳤던 영화제작사들과 그 모습이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모두 사무실 중심의 독립 프로덕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뒤 몇년이 지나 영화제작에 손을 뻗친 대기업들의 전위대 앞에서 영화판이 맥없이 그 오랜 전통을 무너뜨리는 모습은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어쨌던 <공포의 외인구
이장호 [49] - 성공과 실패의 희비곡선, <이장호의 외인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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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잘 돌아가는 감독답게, 스파이크 리의 영화치고 따분한 장면이 별로 없지만, 그런 만큼 앞뒤가 맞는 작품 또한 별로 없다. 디테일은 물샐틈 없는데, 구조는 기우뚱거린다. 아이디어는 엄청 좋은데 뒷감당이 안 되는 이런 측면에서, 할리우드 감독 중에 스파이크 리 따라올 사람이 없다.
비록 못지않게 삐그덕거리기는 하지만, 그의 초기작들은, 심지어 <말콤X>조차도, 새로운 정치적 수사학을 기약하는 바가 있었다. 사회적 만족보다는 사회적 갈등에 기반한 과시적 교훈주의라고나 할까. 그러나 <브룩클린의 아이들>(Crooklyn) 이후, 리의 영화는 브레인스토밍 결과 탄생한 아류작들 냄새를 풍겼다. 저예산 소품이건 광활한 도시의 풍경이건간에, 붓은 내달리되 형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일필휘지의 화폭이었다. 예외없이 꼭 봐둘 만한 영화이긴 했으되,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성취를 거둬낸 영화들은 또한 결코 아니었다.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 개봉에 맞춰 서둘러 제작된
세 마리 토끼를 쫓다 망한 스파이크 리, <썸머 오브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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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해 열린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엇보다도 의외의 선택은 단연 힐라리 스왱크의 여우주연상 수상일 것이다.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성향에 비추어볼 때, <소년은 울지 않는다>(킴벌리 피어스)에서 남장여자를 연기한 배우의 수상 가능성은 거의 전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영국의 영화잡지인 <사이트 앤 사운드>는 이 영화와 <리플리>(앤서니 밍겔라), <존 말코비치 되기>(스파이크 존스)를 묶어서 뉴 퀴어영화(New Queer Cinema)와의 관련성 속에서 논평하기도 했다. 이런 최근의 흐름들은 마치 ‘퀴어’라는 새로운 정치학 또는 담론이 미국의 독립영화는 물론이고 주류영화에서조차 하나의 상업성 있는 소잿거리나 두드러진 경향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레즈비언과 게이영화와 퀴어영화간의 구별도 분명하게 이해되지 못한 채 그 이름들이 소통되는 우리 현실 속에서 미국영화의 이런 흐름과 변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또 이 영화들은
주류퀴어, 그 모순어법, 뉴퀴어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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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드디어 봄이 왔다. 봄비도 내렸고 조금만 있으면 꽃들도 사방천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하지만 우울하다. 변화없는 일상의 초라함이 풍성한 자연 앞에 더욱 극명해지는 것도 ‘우울’하고, 유행따라 시작한 주식이 하한가 치는 것도 ‘우울’하다. 이도저도 모르는 철부지였다면 꽃구경에 신났을 텐데, 세상만사 쓴맛을 조금 알아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30대 사나이들의 솔직한 우정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는 이제 겨우 8회분을 방영했지만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는 분명한 타깃과 11시라는 시간대 등 틈새 공략으로 평균 시청률 20%, 점유율 33%의(AC닐슨 집계)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첫 녹화 날부터 오랫동안 일했던 팀 같았다는 천운의 팀워크와 <남자 셋 여자 셋>을 이끈 송창의 PD의 연출, 생활 자체가 ‘코미디’인 정웅인, 박상면, 윤다훈의 입담은 앞으로의 상한가도 점쳐볼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친구>의 미덕은
단기간에 인기 시트콤으로 부상한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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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스크린의 평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영을 주는 3-D 테크놀로지는, 1897년에까지 거슬러갈 만큼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혁신의 절정기는 주지하다시피 5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것은 관객 수가 줄고 텔레비전의 위협이 등장하던 당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다시 끌어 모으려는, 일종의 이미지 향상의 시도였던 것이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손을 댔던 이 ‘획기적인’ 테크놀로지는 그러나 단지 진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 유행은 대략 52년에서 54년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다. 3-D라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범작들이었지만, 아마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장의 손길은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일까? 히치콕의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성공을 거둔 3-D 영화 가운데 한편일 뿐만 아니라, 또한
히치콕 전성기를 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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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는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겠다. 그러나 전후 폴란드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 ‘노동자 영웅’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버렸는가를 그린 <대리석 인간>(cz owiek z marmuru)이나 연대노조 운동을 그린 <철의 인간>(cz owiek z elaza)은 실로 리얼리즘영화의 압권이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당통>이 소개됐다는 데,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바이다의 영화 <당통>이 지닌 매력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대변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바이다는 몇년 전 폴란드 신문 <가제타 뷔보르챠>와의 인터뷰에서, 연대노조운동에 참여하면서 부딪쳤던 운동 지도부의 다양한 성격들과 그에 대한 운동적 반성이 아닌 인간적 반성이 이
인간보다 혁명보다 인간! <당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