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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소비노(33)는 금발의 백치미인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배우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도 그랬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에서도 ‘백치미인’ 마릴린 먼로가 그에게 딱이었다. 국내에 지각 개봉한 이 영화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 특유의 걸음걸이와 어투, 헤픈 미소를 고스란히 재현했으며 텅 빈 얼굴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파이크 리의 <썸머 오브 샘>의 다이아나 또한, 백치는 아니지만 남편의 외도를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고 미련한 여자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백치미도 일품이었다. 삐딱거리는 걸음새하며 높은 톤의 목소리와 억양, 번잡스런 옷차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창녀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건 미라 소비노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일 뿐이다. 미라 소비노는 대단한 노력과 정교한 연기로 백치의 이미지를 뽑어냈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날아가는 듯한 어투를 얻기
창녀에서 성녀까지,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미라 소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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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들에게 커피와 실지렁이를 팔 듯 몸을 내주는 <섬>의 희진. 그녀의 얇은 갈색치마는 사내들의 배설물에 젖기 일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선 비린내가 요동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섬에 정주해서 그녀를 약탈하는 이들은 유약하기 그지없다. 죽기 위해 섬을 찾은 현식도 섬을 지배하는 그녀 앞에서 이내 칭얼대고 결국 뒷걸음질친다. 한치의 오차나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욕망의 관자놀이를 겨누는 그녀 앞에서 그들은 무력하다. 찌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먹이를 쳐올리는 그녀의 민첩함은 위협적이다. 푸른 바다 흰 포말 위에서 태어나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키프로스 섬에서 노닐지도 않지만, 희진 아니 서정(28)은 본능적인 직관과 대담한 의지로 <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깊게 팬 관능적인 여신의 가슴선 뒤로 기다란 삶의 상처를 달고 다니는 희진 역을 맡아 연기한 서정은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그래서 ‘운좋게’ 거리에서 픽업된 풋내기
충무로의 섬, 독립영화의 대지, <섬>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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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풍경은 큰 변화가 없다. 번화가엔 높은 굽의 구두에 카우보이 모자, 헐렁한 루즈삭스를 신은 여고생들이 여전히 거리를 누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호텔 회견장에 들어서니 연애만화 같은 한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이야기>의 이와이 순지 (38) 감독과 배우 마쓰 다카코(松たか子, 22). 배우, 감독이 아니라 오누이 같기도 하고, 진짜 ‘연인’처럼 꼭 어울리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이와이 순지 감독은 약간 몽롱한 눈동자에 느린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의 시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최근엔 극장용 영화보다 뮤직비디오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공중파 TV에선 감독이 인기 그룹 Glay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연예계 뉴스로 다뤄지고 있었다. 마쓰 다카코 역시 승승장구. 지난해에 <선보고 결혼하기>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방송사에서 연기상을 받는 등 부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짧은 시간에
<4월 이야기>의 감독 이와이 순지와 배우 마쓰 다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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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 낙선운동. ‘선거혁명’이라는 수사가 통할 만큼 거대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운동이 한동안 맥없이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신명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 운동을 지지하는 일은 최소한의 정신건강만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이 운동을 지지하며 이 운동이 우리 사회에 분명한 유익을 남기길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이 운동의 거대한 일사불란함 속에서 얼마간의 허전함을 느낀다. 허전함은 이 운동이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들, 몹쓸 정치인들을 뽑은 게 바로 우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오늘 우리가 온갖 비난과 분노를 쏟아붓고 있는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이다.
허전함은 이 운동을 주도하는 총선시민연대에서도 온다. 그 연대는 여러 입장과 견해를 초월한 위대한 연대인 동시에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을 생략한 허황한 연대이기도 하다. 가장 끔찍한 경우는 이른바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 매체대책 시민협의회) 관련인사들의 참여다. 나는 도덕을 기준으로 온 세상을 판단하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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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봄, 처음으로 칸영화제엘 갔다. 당시로선 일간지들이 아직 해외영화제에 기자를 보내지 않을 때였고, 나는 대종상 예심 심사료 받은 것과 약간의 돈을 모아 자비출장을 결행했다. 내가 놀랐던 건, 영화제 본부 건물은 외관이 예상보다 작고 수수했다는 것이고, 일단 영화제가 시작되니 해변을 따라 뻗어있는 시가지가 모두 행사장이더라는 것이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받은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 몇가지. 좋았던 건, 첫째, 영화제 주요 행사장과 호텔 로비들에 아침마다 가지런히 비치되는 각종 영화제 일간지들. <버라이어티> 등 잡지들이 현지에서 발행하는 일간지들은 매일매일의 영화제 상황을 환하게 알려 주었다. 둘째, 아이디카드의 위력. 아이디카드 발급 기준은 까다롭지만 일단 받으면 견본시 소극장들을 포함해서 본부 건물안에 있는 수십개 상영관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릴 수 있다. 단, 입구에 줄서서 입장권을 받아야하는 경쟁부문 메인 시사회만 빼고. 그래서 상영일정표를 들고 체크해가며 한 극장
[편집장이 독자에게] 또하나의 국제영화제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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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4월16일(일) 밤 11시20분
‘욕망의 에로틱한 대상’ 마릴린 먼로가 수많은 추종자들, 또는 모방자들을 낳았다는 건 스타로서 그녀의 지위를 감안해 보건대 당연한 것이다. 떠오르는 대로 한 장면만 예를 들어보자. 장현수 감독의 <본 투 킬>(1996). 변변찮은 노래 실력을 가진 가수 지망생이자 룸 살롱 호스티스인 수하(심은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 않기에 처음엔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있으면 분명 들어본 기억이 있는 노래라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강의 여행자… 노 리턴, 노 리턴….” 노랫소리는 이제 마릴린 먼로의 탁한 목소리와 오버랩된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무엇보다도 먼로가 부르는 동명의 이 노래만으로도 뇌리에 오래 남아 있는 그런 영화다. 그건 아마 페기 리가 부르는 <자니 기타>와 함께 여성이 부르는 가장 유명한 서부극 주제곡이라고 꼽아도 무방할
섹시한 스펙터클, 오토 플레밍거의 <돌아오지 않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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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식스 센스> 청년실업자 남기남의 여섯번째 감각
[정훈이 만화] <식스 센스> 청년실업자 남기남의 여섯번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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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인간 군상을 그린 <매그놀리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퀴즈쇼다. 영화 시작과 함께 던져지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들. 그린 베리 힐의 한 선량한 약사가 강도 셋에 피살됐는데, 범인들 이름이 그린, 베리, 힐이더라. 헬기에서 떨어져 죽은 다이버와 그를 떨어뜨린 조종사가, 사건 며칠 전 카지노 블랙잭에서 다퉜다더라. 옥상에서 몸을 날린 꼬마가 부부싸움중이던 부모의 총기 오발로 추락중에 즉사했는데, 그 총은 부모의 싸움에 넌더리난 꼬마가 아무나 죽어버리라는 심정으로 장전했다더라. <매그놀리아>는 우연치곤 기막히게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상황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걸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하는 물음과 함께. 아홉이나 되는 주인공들에 휩쓸리다 보면, 그 해답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큰 축은, 죽어가는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자 비로소 그들의 이기심으로 가족들이
기묘한 우연의 희극, 엇갈린 인연의 비극, <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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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사 ‘최가박당’을 이끄는 대표적인 감독 왕정이 주성치와의 콤비를 통해 코믹물을 주도했다면, 유위강과 정이건의 만남은 최가박당의 액션과 무협을 이끌어왔다. <고혹자>시리즈 이후 둘의 만남은 하나의 공식이 되었고, 빈번히 여자 파트너만을 바꾸며 정이건은 그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아마도 정이건은 주윤발이 떠난 90년대 홍콩영화계를 채우는 최고의 액션스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부여된 임무는 카레이서. 그런 점에서 <극속전설>은 유덕화와 양영기가 주연한 <열화전차>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내용상으로도 도시를 질주할 수밖에 없는 홍콩의 청춘군상을 장르적 스타일로 소화해낸 <열화전차>의 기본적인 설정들이 고스란히 차용됐다. 심지어 타이틀 시퀀스에서도 작게 ‘열화전차2’라는 타이틀이 삽입될 정도. 그러나 드라마의 틀은 오히려 무협영화에 가깝다. 강호를 주름잡던 스카이는 새로운 적수를 만나 패배를 맛보고, 전설 속의 아버지를 찾아가 다시 내
유위강과 정이건의 만남, <극속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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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구덩이가 반드시 좋은 함정은 아니다. 전문가일수록 얕은 함정을 판다. 대신 남는 시간은 수많은 유혹의 덫들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데 사용한다. 스릴러물은 특히 그렇다. 계산하지 않고 뭉텅뭉텅 잘라낼 만큼 장면과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미리 캐릭터와 사건과 복선을 배분해서 마름질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를 연결하는 인과 매듭이 뫼비우스 끈처럼 매끈하게 꼬이는 것이다. 스릴러의 장치들을 끌어모았지만 <디펜스>는 이를 솜씨있게 다루는 데는 실패한 영화다.
한때 촉망받는 검사였지만 지금은 별볼일 없는 변호사 신세인 앤드루. 그에게 어느 날 청각장애인인 화가 제인이 찾아온다. 남편 노비의 폭력에 시달리는 제인이 안쓰러운 앤드루는 이혼소송을 맡게 되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문제는 노비가 죽지 않을 경우 이혼이든 위자료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혼전 계약서. 낌새를 눈치챈 남편을 앤드루는 우발적으로 죽이고 서둘러 사건을 은폐하지만 이번엔 제인이 남편살해혐의로 기소된다. 제인을 변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영화,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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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스의 후예들이 코미디의 옷을 걸치면 이런 모습일까? 코너와 머피 형제는 도시의 성자를 자처하고 나서 도시의 쓰레기를 제거해나간다. 그들은 총을 든 도시의 십자군이 되어 마피아와 폭력배들을 살해한다. 그리고는 “네 칼은 빛나고, 내 손은 심판을 내린다”로 시작되는 기도문을 외운다. 그렇다고 해서 <분닥 세인트>가 진지하게 선과 악, 살인과 죄의식의 문제 따위를 다루는 건 아니다. 또한 신랄한 살인 장면 묘사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분닥 세인트>는 이런 것들을 반쯤은 농담 혹은 장난으로 그린 코미디영화다.
무엇보다 <분닥 세인트>는 영화광의 영화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낯익다. 도시의 성자를 자처한 머피 형제와 범인들의 뒤를 쫓다 그들에게 동화된 형사라는 주요 인물의 설정에서, 시간의 앞뒤를 뒤섞은 구성, 사운드와 화면의 대위법적 충돌까지 지금껏 익히 봐오던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게 아니라
종잡기 힘든 황당한 설정, <분닥 세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