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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몸을 짓는 일
가끔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는 질문. 조금 정신이 흐려지더라도 고통을 줄이는 쪽을 원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하세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의 몸에 아픈 부분이 없거나 큰 아픔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강인한 사람이리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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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유언장을 작성하다
얼마 전, 나는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하나 해치웠다. 유언을 한 것이다. 꽤 예전부터 할 일 목록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내게 유언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변호사로서 내가 가진 몇 가지 믿음(?) 중 하나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망인과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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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기억하지 않는 고통
건강검진을 받던 날, 위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손등에 진정제 주삿바늘을 꽂으며 설명을 했다. 바로 앞에 내시경 호스가 보였다. 저게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구나. 검은 색깔부터가 두렵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왕이면 초록색이나 딸기셰이크 같은 분홍색으로 만들 순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어나세요” 하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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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불투명한 아카이브
올봄에 동료들과 함께 펴낸 책 <원본 없는 판타지>의 본래 제목은 ‘불투명한 아카이브’였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한국 근현대 문화사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은 공식 역사에서 비가시화·주변화된 장면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미완의’ 혹은 ‘존재하지 않는’ 아카이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애초의 제목을 단념한 것은 ‘불투명한 아카이브’
글: 오혜진 │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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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혼란의 추억
철학과를 다녔고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며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한때 이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고 법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문과와 이과 구분이 그때만 해도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거대한 선택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련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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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언어의 효율에 대하여
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다. 법률문장을 쉽게 고쳐 쓰자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높임말로 쓰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런 흐름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은 한글이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한국어 문법을 일부 차용한 일종의 외국어나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법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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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는 일
그날은 Y가 출근 버스 안에서 졸아 종점까지 가버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 마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Y를 뺀 세상 전부가. Y가 출근한 직장에서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집으로 돌아가자 그곳엔 다른 이가 아무 일 없듯이 살고 있었다. Y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문자 그대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와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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