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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ew 2000년, 감독 마이클 디너 출연 리처드 드레퓌스, 버트 레이놀즈, 케리 앤 모스 장르 코미디 (콜럼비아 트라이스타)2001년 한국영화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조폭영화들의 주인공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 <크루>는 한때 잘 나가던 마피아들의 지루한 노년을 보여준다. 죽마고우인 바비(리처드 드레퓌스)와 조이(버트 레이놀즈), 마이크(댄 헤다야), 토니(시모어 카셀)의 어린 시절 꿈은 같은 마피아 조직에서 신나게 일하는 것이었다. 60년대 말 그들의 꿈은 이루어졌고, 거침없이 한 시절을 풍미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들은 노인의 천국 마이애미의 싸구려 호텔에서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이상 조직 같은 것은 없다.젊은 고객을 받으려는 호텔에서 방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자 바비와 친구들은 머리를 굴린다. 마이크가 일하는 장의사에서 무연고 시체를 하나 빼내 호텔 로비에 갖다두는 것이다. 물론 머리에 총알을 박아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방아쇠도 못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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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고용한 아르바이트는 기존에 일하던 이들처럼 영화감독 지망생이 아니다. 평범하고 건장한 20대의 남자로, 일반인 정도의 영화상식을 갖고 있을 정도이며 이른바 예술영화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업무에 지장이 있지는 않다. 그만큼 비디오대여점에서 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기존의 성향과 다른 이를 고용해서 발생할 수 있는 우려와 달리, 최근 고객들로부터 이외의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아르바이트는 좀 다르네요” 또는 “이번 아르바이트 잘 뽑으셨던데요” 등의 호의적인 반응들 말이다. 그런 반응들에 의아해하며 그렇게 언급하는 고객들을 분석해 보건대, 그들 대개가 에로 비디오 마니아란 공통점을 발견했다.원래 에로 비디오를 빌려가는 고객들에겐 비디오대여점의 ‘불문율의 법칙’이란 게 있다. 첫째, 절대로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 말 것, 둘째, 묻지 않고 검은 비닐 봉투에 담아줄 것, 셋째, 해당 영화에 대해 언급하거나 가능한
에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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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거하기 전에 더 재미있는 것이, 여그 올라와 가지고 무엇부터 시작했는고 하면 현미 빵 장사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남대문통5가라고 하지요. 거기서 하숙을 하는데 그 일가 되는 사람에게 딸이 하나 있어요. 김명희. 그 딸하고 나하고 가까웠어요. 그게 말하자면 첫사랑이라면 첫사랑이죠. 그런데 그 어머니가 나하고 가깝게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 그러냐? 가세가 어려워서 고학을 하고 있는데 언제 자기 모녀를 건사하는가 말이지. 그러다가 그 여자가 그 소녀를, 그 동네 정총대(町總代)라고 하죠(지금의 동장(洞張)에 해당하는 일제시대 행정직 중 하나. <삼대> 등의 소설에서도 권력이나 축재와 연관된 인물로 묘사되며 실제로 전시체제에서 공출, 징병 등을 독려하는 지역조직의 세포로 기능했다.- 필자) 그 정총대의 소실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얘가, 명희가 몹시 울었어요. 며칠 울더니 얘가 행방불명되어버렸어요. 알아보니까 자포자기 해가지고 그리 소실로 갈라면 차라리,
최초의 신문 시나리오 공모 당선, 타협을 몰랐던 작가 최금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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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이야기 회사원 남우는 눈 내리는 겨울날, 고향 친구 준호의 연락을 받는다. 준호와 재회한 자리에서 남우는 유년기의 추억에 잠긴다. 남우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바다에 잃고, 할머니,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조용하고 외로운 남우의 벗은 준호와 떠돌이 고양이 요. 그러던 어느날, 신비의 구슬을 손에 넣은 남우는 등대 속에서 환상의 세계로 날아간다. 이성강 감독, 이병헌, 배종옥 목소리 출연, 씨즈엔터테인먼트 제작, 청어람 배급, 상영시간 80분박평식 갓 구워낸 빵에 크림을 바르는 기분 ★★★☆심영섭 이제 이웃집에는 토토로 대신 마리가 산다 ★★★☆■ 디 아더스1945년 영국 채널 제도의 저지섬. 늘 안개로 덮인 외진 곳의 저택에 젊은 부인 그레이스가 햇빛에 닿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하인들이 모두 떠나버린 저택에 밀즈 부인 일행이 찾아온다. 그뒤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피아노가 저절로 연주되는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알
마리이야기/디 아더스/나쁜 남자/아프리카/잔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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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존 알론조는 오슨 웰스 감독의 <위대한 앰버슨가>를 촬영했던 스탠리 코테즈로 인해 때아닌 횡재를 하게 된다. 이는 <차이나타운>의 촬영을 맡게 된 코테즈와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견해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를 자연스럽고 어둡게 보이려 했던 폴란스키와 달리 코테즈는 디퓨전 없이는 촬영할 수 없다며 감독의 의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고된 코테즈의 자리를 대신할 역할이 알론조에게 주어졌다. 그는 디퓨전 없이 촬영하길 원하는 감독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2.35 대 1의 비율을 갖춘 아나모픽 렌즈에 적격인 40mm렌즈로 촬영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곧, 작업에 합류하게 된다.일견 지루해 보이기도 하는 <차이나타운>은 복잡한 화면이나 잦은 시점의 변동없이 일관되게 주인공 자이츠(잭 니콜슨)의 행로를 따라간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과잉은 절제되고 꼭 필요한 그만큼을 보여주는 알론조의 카메라는 암울하고 극적인 영화의 스토
<차이나타운> <미지와의 조우>의 존 알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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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는 풍성했던 것들이 이젠 다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피터 잭슨 감독의 수백만달러짜리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맵싸한 오프닝 멘트다. 충실함의 부재는 잃어버린 시간에 비하면 별로 화젯거리도 못 될 것이다. 영화화하기로 한 J.R.R.톨킨 컬트 3부작 중 상당히 무절제해 보이는 이 첫편에는 어딘가 애조띤 톤이 섞여 있다.호빗 거실의 아늑한 한구석에서부터 어둡기 이를 데 없는 모르도(Mordor)의 척박한 산야에 이르기까지, 북구 요정에서부터 푸른 얼굴의 오르크에 이르기까지, 홍콩 장인들의 손을 빌려 디자인하고 장치한 마법사들의 전쟁에서부터 느릿느릿 결말에 이르기까지, 피터 잭슨의 각색과 영화화 작업은 확실히 그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역사적 유물이 마침내 삶을 얻은 것이다. 미국에서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자 특정 연령대(그리고 어쩌면 특정 성별)의 비평가들은 스스로의 해리 포터를 얻은 셈이 돼버렸다.정말, 컴퓨터그래픽 처리된 군중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원작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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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년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어린이 사생대회에서 무슨 상인가를 받은 적이 있다. 아마 그 부상(副賞)으로 입장권을 받아, 어머니를 모시고(라기보다는 어머니 소매를 잡고서였겠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무슨 춤 공연인지를 보았던 것 같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재주를 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초등학교 이후 학창 시절을 통해 글쓰기로 무슨 상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던 걸로 보아(심지어 이런저런 백일장에 학급 대표로도 뽑힌 적이 없었던 걸로 보아), 내 원초적 감수성은 문기(文氣)에 있지 않고 색기(色氣)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내비치기 위해서다. 문기와 색기는 세속적으로 흔히 귀(貴)와 천(賤)에 상응하는 만큼, 이런 고백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숨기거나 덧칠한다고 해서 내가 귀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사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황홀감은 빛깔에서 왔다. 그 빛깔은 구
아저씨 <마리 이야기> 보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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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 전만 해도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손으로 그림을 한장 한장 그리거나 인형을 한 동작씩 움직이는 기존 애니메이션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입체감과 역동적인 카메라 구도는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스크린에 투사된다는 자체만으로 경이감을 일으켰다. 이러한 경이로움에는 우리보다 앞선 미래의 영상기술을 가졌다는 선망과 ‘우리는 저런 그림 절대 못 만들어’로 대표되는 자기검열과 자괴감의 복잡한 속내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94년께 갑작스런 애니메이션 붐이 불었을 때 많은 회사들이 저마다 디지털 영상이라는 ‘할리우드의 마법’을 자신이 제대로 전수받았다고 자랑했다. 그 결과 여러 작품들이 마치 ‘우리는 이런 기술을 썼다’고 자랑하듯 차가운 금속성 질감의 그림을 내용과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끼워넣고 흐뭇해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하지만 이제 디지털 영상 테크놀로지는 더이상 ILM이나 픽사 등 할리우드 몇몇 회사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몬스터 주식회사>, 그 유머와 테크날러지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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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슬슬 시작해서, 중학교 입학하면서 본격화된 나의 일기 쓰기는 사회생활 3년차 때까지 질기게 이어졌다. 햇수로 치면 13년이 넘는 긴 세월이었다.매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정 쓸 게 없으면, 그날 처음 맛본 신제품 라면의 맛을 상세히 기록한다거나, 새로 나온 과자 봉지를 붙여놓는 쓸데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묵은해를 보내며 실로 몇년 만에 그 일기장들을 들춰보았다. 이제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되었으니 거의 25년 전의 ‘잡스러운 기록’들을 꺼내 읽은 셈이다.재미있는 건 새해가 되거나 새달이 되면 그 달에 읽어야 할 책들과 봐야 할 영화들을 번호를 매기며 적어놓고 목표를 설정해놓는 것이었다. 그 책들의 수준이래봤자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삼중당 문고 전집이나 고전이라 불리는 문학서적들 정도이고, 봐야 할 영화들은 뻔하고 평범한 수준의 것들이다.어쨌든 목표량은 그 다음달엔 어김없이 ‘O’와 ‘X’로 읽은 것, 본 것,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내 일기장의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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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를 불문하고 <작은 아씨들>에 좋은 기억을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책과 글을 좋아했던 소녀라면 자신 역시 조세핀이 된 기분으로 꿈에 잠겼을 법하고, 소년들은 사랑스러운 자매들과 점차 가까워지는 로리 로렌스처럼 수줍은 기분으로 각 소녀들의 매력에 가슴을 설을 법하다.위노나 라이더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했던 영화판들 역시 매력이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작은 아씨들’이다. 크리스마스날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의 ‘다음에 만날 때까지는 모두들 작은 아씨들이 되어 있기를’이라는 강령에 따라 모두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천로역정을 매뉴얼 삼아 밤낮 분투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왠지 우스꽝스럽고 귀여운데 동화용으로는 교훈적인 면만 강조한 때문인지 이들의 인간적인 면은 꽤 사라졌다. 이를테면 갸륵하게도 어머니의 여비를 위해 아끼는 머리채를 잘라 판 조가 침대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메그가 “울지 마, 아버지는 곧 나아지실 거야”라고 위로하자 “
꽃은 지고, 일출은 한순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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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겨레>에 쓴 ‘얼치기 도사들’은 약간의 소란을 낳았다. 이미 해병전우회나 의사들과 더 큰 소란을 겪기도 했거니와 졸렬하나마 사회적 의견을 제출함으로써 일용할 양식을 얻는 사람으로선 그런 일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하는 나로선 대수롭지 않아 할 만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접을 수 없는 불편함이 내내 남았다. 그 글은 내 청년 시절의 소중한 선생 가운데 한 사람을 겨냥하는 패륜을 담았기 때문이다.그, 이현주 목사는 그저 예수를 팔아먹는 크고 작은 보도방들인 한국 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는 일에 분투했다. 그가 짓거나 옮긴 예수와 복음서에 관한 몇몇 노작들은 서남동 안병무 같은 민중신학자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내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민중신학자들이 내게 예수를 논증해주었다면 이현주는 내게 두런두런 예수를 들려주었다. 최악의 반동과 최고의 열정이 맞서던 시절, 그와 권정생(<강아지똥>을 지은) 들은 조용한 소금이었다.10여년이 흘러, 전해 듣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