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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연두색 봉투가 하도 얌전하여 나도 얌전하게 가위로 봉투를 오리는데 천원짜리 지폐 몇장이 먼저 툭 떨어졌다. 의아해하며 내용물을 펼쳐보니 <어린 신부> 비평문 두장, 따로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 한장이 들어 있고, 본인의 리뷰가 혹시 <씨네21>에 실리게 되면 한권 보내달라는 메모가 말미에 붙어 있었다. 동봉된 돈의 액수는 3천원. <씨네21> 한권값이다.그 군인은 제대하면 영화 공부 열심히 해서 5년 안에 <씨네21>의 표지에 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외출하는 동료들에게 <씨네21>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현역 군인이자 예비 영화인인 그에게는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자신의 삶이 유예되어 있다고 느끼며 피안을 건너다보는 젊은이에게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환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간절할 것인가.참으로 오랜만에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씨네21>은 독자의 개성과 조건에 따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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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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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첨단산업의 현장> 남기남, 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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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세워둔 차가 새벽 세 시에 끌려갔다. 행정이 아니라 사업일세, 구시렁거리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차 찾으러 가자니 심사가 꼬였다. 그 동네 사는 친구와 선배 커플의 집에 죽치고 앉아 인생이 우울하다며 심드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말 잘 듣는 애처럼 뭘 그리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느냐”는 타박도 덤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편안했다. 특별한 역할의 잣대에 나 자신을 밀어넣기 위하여 혹은 그런 것에 맞지 않는 어떤 결핍이나 잉여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회관계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보아왔고 마음의 복잡한 지형까지 수용해주는 지인들의 품이었기 때문이다.다음날에는 어떤 감독이 우리 동네로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이유였지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심경이 역력했다. 창작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뼈저린 회의를 곱씹으며 긴 나날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사람 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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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하류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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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결혼하고 싶은 여자> 신랑감 공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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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린 텍스트들의 운명은 불행하다. 어떤 시도, 에세이도 그 사유의 구조와 언어의 향취를 우아하게 자랑하는 대신 입시용 도마 위에 얹혀 산산이 찢기고 분류당한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시의 한 구절에 밑줄을 죽 긋고 그 의미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참고서가 가르쳐준 ‘보릿고개의 아픔’이 아닌 ‘봄날의 서정’이라는 ‘틀린’ 답을 기어이 적어냈다. 발표된 정답은 물론 보릿고개쪽이었다.그 유혈 낭자한 해부의 시간을 뚫고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언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청자 연적 이야기가 그중의 하나다. 여섯개의 연꽃 잎으로 장식된 자그마한 도자기에서 이파리 하나가 살짝 비뚤어져 있더라며,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감행한 고려 도공의 미의식을 말한 에세이였다.이런 삐딱한 미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특정 영화 혹은 감독에 대한 평이 천편일률일 때 지루하고 불만스럽다. 내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모두 한목소리로 말하면 문득 의심스러워지며 딴청을 부리고 싶어진다.
차이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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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효자동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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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목포는 항구다> '남기남 되기'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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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전략적인 주목 대상으로 선택했다.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두루 훑어보는 균형과 집중적인 이슈 만들기를 기본 목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영화만큼 후자의 측면에 잘 부합하는 아이템도 드물 터이다. 좋은 일이다. 영화인들끼리 서로 자신의 일인 양 놀라워하면서 수상의 가능성까지 점쳐보는 한담도 즐거워 보인다. 올해 두명의 취재기자를 칸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던 <씨네21>이 그곳에서 벌어질 풍경들을 다채롭게 보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미리 흐뭇하다.이런 유의 외국 ‘잔치’는 길게 보면 15년 이상, 짧게 보아도 10여년 가까이 축적된 다각도의 노력이 맺어내는 하나의 결실이다. 1980년대의 임권택, 이장호, 박광수, 장선우, 배창호로부터 조심스럽게 명명되기 시작한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뒤로 단 한번의 심각한 후퇴없이 지그재그로 폭과 깊이를 넓혀왔다. 만약 누군가가 앞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다시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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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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