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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1979년에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봐도 좋은 그런 영화다. 이마무라 영화가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 레퍼런스로 활용한 영화가 아님은 아마도 (두)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편의 <복수는 나의 것>은 단지 제목이 같다는 점 외에 어떤 공통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영화들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그건 이 두 영화가 모두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즐거움이 아닌, 아니 그것과는 반대되는 감정, 즉 불쾌의 감정을 느끼게 할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들이기에 그렇다. 박찬욱의 영화나 이마무라의 영화나 둘 다 끔찍한 범죄를 매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살 만하지 않다고 하는 불쾌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불쾌한 영화’이며, 그래서 편한 주류영화에 익숙해 있는 관객에게는 낯
홍성남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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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은 조금 의도적인 영화다.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처절한 비극의 원인이 썩어빠진 자본의 세상이라 생각하도록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비극의 원인은, 더 정확히 말해 그 동인은, 실은 영화 자체이다. 카메라는 낭자한 피를 끔찍하게 잡아내는 하드보일드한 눈과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 착잡한 달동네의 풍경를 단번에 훑어내려는 야심찬 현실적 조망의 눈 사이에서, 사실상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 자체로 인해 이 영화는 문제작이 된다. 아직, 역사적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작가들의 의도는 더 영화 속에 녹아 들어가거나, 아니면 더 현실로 나오기 위해 영화적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를 일시적으로 망각하거나 해야 한다.
영화의 음악을 맡은 어어부프로젝트는 이미 <반칙왕>을 통해 음악을 영화에 붙이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한마디로 슬픔과 우스꽝스러움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한국 록 음악사에서 어어부프로젝트를 통해 거의
<복수는 나의 것>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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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비디오의 요상한 제목과 낯뜨거운 껍데기 포스터는 한번이라도 더 그쪽으로 손길이 가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나, 빌리는 사람과 반납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적잖은 민망함을 주는 것 같다. 텅빈 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 아저씨는 분명히 에로진열장 근처에서 재빨리 무언가를 낚으려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설렁설렁 그 근처를 배회하자 내 눈치를 보시더니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나가셨다.물론 프로들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영화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에로비디오를 상습적으로 빌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에로비디오만 빌려보지 않는다 하였다. ‘에로비디오와 타르콥스키’식으로 꼭 예술영화를 위에 한두개 얹어서 같이 빌린다나? 여하튼 아저씨가 나가신 후 나는 슬금슬금 에로코너로 가서 잽싸게 두개를 골랐다. 그때는 업무상 비디오의 껍데기까지 필요했고, 나는 의아해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을 피해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그렇게 서 있었다. 결국 그는 말없이 검은 봉지 안에 제목이 안 보이
“<여성동무 으뜸 가리개>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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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포드 파크 1932년 11월 잉글랜드. 백만장자 윌리엄 매코들 경과 부인 실비아는 전원저택 고스포드 파크에서 주말사냥 파티를 열고 친지들을 초대한다. 위층 손님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허세를 교환하는 동안 아래층 하인들은 주인들에 관한 진실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매코들 경이 살해되면서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에밀리 왓슨 출연, 디지털 네가 수입, 20세기폭스 코리아 배급, 상영시간 137분김봉석 계급과 군중, 그 심연으로 파고드는 거장의 손길 ★★★★박평식 증오란 ‘정착된 분노’! 77살 감독의 예지에 감탄할 따름 ★★★★심영섭 조셉 로지 <하인>의 애거사 크리스티 버전 ★★★★■ 공각기공대세계가 완전히 정보화된 서기 2029년. 망명을 요청한 외무성의 프로그래머와 그가 망명을 원한 국가의 외교관의 대화를 도청하던 쿠사나기는 외교관을 사살하고 사라져버린다. 한편, 지금 이 도시를 어지럽히는 존재는 인형사. 쿠사나기와 동료들은
고스포드 파크/공각기공대/재밌는 영화/에브리바디 페이머스/다이아몬드를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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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을 찍던 해인 85년도에 <어우동>을 찍으면서 나에게 의상철학 비슷한 게 생겼어. 영화의상은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는 것. 영화의상이란 모름지기 유행을 선도하고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영화에서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액세서리를 하고 나왔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곤 하잖아. 그게 흥행한 영화라면 말할 나위가 없지. 근데 영화매체라는 게 만들어지는 시기와 유포되는 시기가 어느 정도 간격이 있거든. 그러니까 만들 당시엔 획기적이고 시대를 앞서도 만들고 나서 상영될 즈음이면 어느새 남들이 다 하는 한물간 패션이 되곤 했어.그렇기 때문에 의상을 만들 때 더욱 신경을 써야 했지. 앞으로 어떤 패션이 주목을 받겠구나 하는 시대감과 더불어 그 이후의 이미지까지 만들어내는 창조력이 함께 필요한 작업이었어. <어우동>이 관객을 만나서는 ‘그저 그런 에로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극중 의상의 작은 변주들이 보여주는 신선한
빚지면서도 꾸준히 일에 전념, 영화의상에 관한 깨달음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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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복수는 나의 것> 기자시사회에 갔었다.톱스타들도 떼로 오고, 온갖 매체의 카메라들이 동원되고, 여기저기 아는 이들이 보이는, 그러니까 충무로에서 기대해온 영화의 첫 공개시사회의 분위기였다.여기저기 눈인사가 오가고, 무대 인사가 있고, 불이 꺼지고 두 시간이 좀 지났다. 불이 켜졌다. 나는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토할 것 같아서였다. 영화를 보고 토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건, 84년쯤 외국어대 대강당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본 뒤 두번째이다. 토하고 싶다고 했다고 <복수는 나의 것> 관계자 여러분, 혹시 오해하지 마시라. 혐오나 경멸의 뜻은 절대 아니다. 어쨌든, 토기를 느꼈으나 아는 사람들 눈빛과 마주치면서 이빨을 악물어야 했다. 스타들의 옆모습도 훔쳐봐야 하고, 지인들도 챙겨야 했고, 수인사도 나눠야 했으니…. 결국 그걸로 감정의 배설도 제대로 못하고 <복수는 나의 것>을 본 셈이 되었다.<집으로
시사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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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개인의 경험은 특수한 것이지만, 그걸 보편적인 코드로 옮기는 게 작가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봐도 그렇다. 영화에는 감독하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하나 안 나오지만, 그 모든 풍경과 표정과 대사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져온다. 영화 마지막에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뜰 때, 나는 이 영화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화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진심이 들어 있다는 뜻에서. 만일 “이 땅의 모든 할머니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했으면, 그건 “물을 아껴 쓰자”나 “자나깨나 불조심” 같은 표어를 보는 기분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문제는 ‘외’(外)가 붙었다는 데 있다. 외할머니, 바깥에 있는 할머니다. 주류나 정통이 아닌 만큼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나는 훌쩍거렸는데, 아마 감독이 자신의 외할머니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나 보다.어떤 문학평론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기 경험을 가지고 쓴 소설은,
문제는 리얼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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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가게 되면 꼭 찾는 곳이 있다. 대학가의 음반가게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LP음반이 매장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중고음반가게이기 십상이다. 더러 괜찮은 음반을 싼값에 구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단지 우리나라에서 구하지 못한 음반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럴 만큼 음악을 많이 알거나 즐기지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런 음반가게의 분위기인 것 같다. 목이 쭈글쭈글하게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부스스하지만 음악에는 도통해보이는 종업원과 단순 거래관계 이상의 유대와 연대감이 느껴지는 가게 안의 손님들(대체로 행색도 종업원과 비슷하다), 그리고 가게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근처 클럽의 조악한 공연 포스터와 아티스트 사진들(물론 머라이어 캐리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사진은 아니다)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번도 속해보진 못했으나 과거에도, 지금도 부러운 커뮤니티를.<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롭(존 쿠색)이 운
김은형의 오!컬트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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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시작되자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학생회관 건물에는 붉은 글씨로 쓴 대형 현수막들이 걸렸다. 미군은 물러가라, 신자유주의 반대, 시장경제 반대, 노동자 파업 지지, 장애자 이동권 보장하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라…. 대체로 이 같은 절규들이다.이번 학기에는 여러 대학에서 비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장악했고, 비운동권 총학들은 연합체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운동권이 총학을 장악한 대학의 캠퍼스에도 붉은 글씨의 현수막들은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이른바 명문이라는 한 대학의 총학생회 출범식은 요란하고도 적막했다. 하드록을 두들겨대는 밴드와 아마추어 가수들을 초청해놓고 손님을 끌어보았지만 무대 아래 모인 학생은 50여명에 불과했다. 그 출범식이 열리는 운동장 옆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포크댄스나 농구나 배구를 하고 있었다. 과연, 청춘은 아름다워 보였다. 청춘은 아름다워 보였지만, 총학은 그 붉은 현수막으로 표방한 이념적 가치와 지향점을 향해서 대학 공동체의 힘을 모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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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名家)라고 예외는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갑작스레 몰아닥친 시련 앞에 25년 동안 쌓아올린 명성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동아수출공사. 1973년부터 83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해온 전통의 명가였지만, 삼성영상사업단을 비롯한 대기업들마저 뒷걸음치게 한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한파와 계속되는 흥행실패의 부담을 견뎌내진 못했다. 3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였으나 서울 관객 5천명도 끌어들이지 못한 채 1주일 만에 종영한 <러브>를 끝으로 한국영화 제작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 당시 아버지인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과 함께 자금난을 수습하느라 뛰어다녔던 이호성(39) 대표에게 98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월21일 동아수출공사에서 떨어져나와 새로 둥지를 튼 동아엔터테인먼트는 이호성 대표에게 각별하다. 한국영화 제작에 다시 뛰어들겠다는 일종의 ‘재기’ 선언이기 때문. 지난 2월 청담동에 새 사무실을 차리고 난 뒤 얼마 전부터 시나리오 개발
동아수출공사에서 독립한 동아엔터테인먼트 대표 이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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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은 아니겠지. 송은경(37)은 문득문득 잠에서 깨어 자신에게 묻는다. 분장의 길에 접어든 지 10년, 고단했던 2년간의 미국 유학 끝에 고국 땅을 밟으며 얼마나 불안해 했던가. 날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까. 분장 인생의 첫 영화 <집으로…>를 만나기 전까지 정신을 갉아먹는 고민의 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6개월간의 오지생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손수 밥을 지어 주연을 맡은 할머니 집으로 날랐고, 마을 경로잔치마다 열심히 추어댄 춤 때문에 ‘핑클’이란 애칭도 얻고, 분장이 도리어 얼굴을 망친다며 도망치는 동네 주민을 따라다니던, 그 한켠에 날벌레, 도마뱀, 개구리….지난 6개월이 모두가 꿈은 아니었을 거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를 신조처럼 되뇌이는 감독 밑에서 ‘마음이 짠할 정도로 늙고 추레한’ 할머니를 만들었고, “와, 저거 완전히 내 옛날 모습이네” 하고 웃어젖힐 정도로 촌스러운 철이, ‘클레오파트라 머리’ 혜윤이도 만들었고,
<집으로…> 분장 송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