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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사기극은 꼬리를 물고 | 출사표7-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러다 감독됐지요“며칠만 버티면 살 수 있었는데….” (훌쩍)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최동훈(32) 감독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TV에서 본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안네의 일기>를 본 뒤 안네가 너무 불쌍하게 여겨졌던 것. 이 불면의 시간 속에서 영화라는 신세계를 발견한 최동훈은 어릴 적부터 “거짓말하기, 그러니까 이야기 만들기”를 낙으로 삼으며 생활했다. 그가 서강대 국문학과에 들어간 것은 ‘야부리꾼’의 당연한 행보처럼 보인다.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처럼 그라고 소설가의 꿈이 없었겠냐만은 “워낙 엉덩이가 가벼워 진득이 글을 쓰지 못하”던 그는 영화를 향한 이정표를 따르기로 결심한다.동아리 ‘영화공동체’에 가입한 최동훈은 다양한 얼굴의 영화와 조우했다. 선배들의 ‘권유’에 따라 유럽영화를 보긴 했지만,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은 70년대 또는 그 이전의 미국영화였다.앨런 J. 파큘라는
2003 신인감독 출사표 -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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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르지만, 우리는 형제! | 출사표8 - <빌리브>의 김용화 감독이러다 감독됐지요유년 시절, 김용화(32)는 ‘태권소년 마루치’를 꿈꿨다. 소년체전에서 은메달을 딸 정도의 실력도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시합 나가서 몇분 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운동이 벅찼고 허무했다” 그렇다고 목표 없이 무데뽀 심산으로 책상머리에 앉을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뭘 하고 싶은 거지”라는 그의 화두는 소일거리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도색잡지 뭉치를 뒤지다 스르르 풀렸다.한 영화잡지의 커버를 장식한 한 털북숭이 남자와의 운명적 조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당시에는 누군지도 몰랐던 그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그의 허연 수염을 보고서 저 나이 먹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일이구나” 여겨졌다. 하긴 그와 전혀 무관한 일도 아니었다. 영화광이었던 아버지 손잡고 춘천의 신도극장과 육림극장을 오가던 시절의 흥분, 운동하면서도 짬짬
2003 신인감독 출사표 - <빌리브>의 김용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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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이순신, 이렇게 태어났다 | 출사표9 - <천군>의 민준기 감독
이러다 감독됐지요
민준기(35) 감독의 성격은 이마만큼이나 시원시원하다. “가발 CF모델도 했다니까요”라며 말문을 튼 그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게 6살 때였을 거예요. 테렌스 영이 감독한 <레드 선>이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이 변종 서부극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배우 미후네 도시로가 사무라이로 나왔는데, 어린 민준기로선 그가 일본도로 총알을 튕겨내는 장면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이때 시작된 영화의 판타지는 1984년 <E.T.>로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에 무지개가 뜨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행복감을 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무렵, 갑자기 가계가 흔들려 2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생활을 해야 했지만, 감독에의 꿈은 그로 하여금 1988년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1기로 입학하게끔 했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2003 신인감독 출사표 - <천군>의 민준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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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를 뒤집었다“다음 뉴스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지식인 H씨. 그는 매주 일요일 저녁 9시가 되면 만사 제쳐두고 반드시 TV 앞에 앉아서 를, 안 본다고 합니다. ” 이 증상은 비단 H씨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지난 1999년 가을 이후 우리 모두에게 나타난 증상이다. ‘사바나 추장’ 심현섭, ‘수다맨’ 강섬범, ‘황마담’ 황승환, ‘이장님’ 김준호, ‘갈갈이’ 박준형, ‘우격다짐’ 이정수, ‘옥동자’ 정종철, ‘세바스찬’ 임혁필, ‘우비삼남매’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우리의 기피증세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바로, 같은 시간 방송되는 <개그콘서트> 때문이다. 햇수로 5년 동안 방영돼오면서 영 시원찮다 싶으면 ‘번개탄’까지 동원해 뜨거운 불씨를 다시 활활 태워왔던 이 프로그램은 좀처럼 시청률 10위권을 벗어나지 않았고, 맨땅에 구르고 진화한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와 완고한 시스템를 정착시켰다. 결국 지난해 말 심현섭, 강성범,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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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는 여러모로 80년대 말, 많은 인기 코너들을 생산해내며 장수를 누렸던 <쇼 비디오 자키>에 젖줄을 대고 있다.하지만 두 프로그램이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앞서 지적한 내러티브의 부재와 함께 개그맨 실명과 개인사에 대한 과감한 사용이다.“이덕재 장군”, “김시덕 장군”, “니가 강서구 화곡동 신정초등학교다닐 때…” 등 모든 코너에서 강박적이라고 느낄 만큼 자주 실명과 출신학교 등을 강조하는 것은 개그맨 개개인의 스타성과도 연결될 뿐 아니라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실 극화된 코미디에서 여간해서는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그 캐릭터에 걸맞은 이름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어진 이름이 리얼리티를 부여받기 위해선 캐릭터가 극의 상황에 몰입되길 요구한다. 하지만 콩트형식이 아닌 코미디는 다르다. 출연자 개개인이 한 코너가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통해 캐릭터라이징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맹구’나 ‘영구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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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투리’는 어느 날 떡하니 박준형의 머릿속에서 잉태된 ‘순수혈통’의 코너는 아니다. 이런 유의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응용한 사투리 교육코너는 SBS 창사초기 코미디나 강원방송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보거나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개그콘서트>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코너들은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19일 보수작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봉숭아학당’이다. 이미 이창훈의 맹구 시절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 내에서도 수많은 멤버이동을 보이며 장수하고 있다. 한참 인기를 끌었던 박성호의 ‘뮤직토크’만 해도 “냉장고를 녹이는 뜨~거운 남자” 박세민이 80년대 코미디에서 써먹던 ‘팝개그’의 재탕이었고, 난쟁이처럼 무릎으로 발을 대신하는 ‘몽당친구들’은 이미 <개그콘서트> 내에서 이병진이 선보였던 코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김영식 PD는 “미묘한 데커레이션이 불러일으키는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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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의 띄어쓰기가 낳을 수 있는 다른 해석의 결과처럼 <개그콘서트>는 동작이나 상황보다는 끊임없이 말을 해체시키고 재결합하는 언어적 유희에 집중한다. ‘무사들의 대화’, ‘생활사투리’, ‘우비삼남매’, ‘우격다짐’ 등 <개그콘서트>의 많은 코너들이 “언어를 가지고 노는 코너”들이다.“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란 표준어를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각각 “좋은 겅께 챙겨”, “오다 줏었다!”는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는 ‘생활사투리’나,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발로 차! 발로 차!” “저 푸른 초원 위에, 교복을 벗고…” 식으로 서로 다른 노래의 구절을 이어붙임으로써 엉뚱한 뜻을 만드는 ‘도레미 삼총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언어유희는 단순한 슬랩스틱코미디와는 달리 관객을 귀찮게 하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 새로 선보인 ‘우비삼남매’는 <개그콘서트>의 방향과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험용 리트머스 같은 코너다. 애니메이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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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사랑할까요?서른 넘긴 지 오래인 남녀에게 요정 애칭이 거북살스럽긴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가 로맨틱코미디의 팅커벨이라면 휴 그랜트(43)는 오베론쯤으로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은막에서 휴 그랜트보다 로맨틱한 코미디언, 혹은 그보다 코믹한 연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왕도 왕 나름. 요정의 왕이라고 한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왕에게는 경배하는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하긴 휴 그랜트와 자주 비교되는 선배 캐리 그랜트도 비슷했다. 마치 이름이 정한 팔자인 양 두 사람의 그랜트는 언제나, 당연히, 지척에 있는 스타로 여겨질지언정(GRANTED), 존재해주어서 고맙다는 따위의 감격어린 치사를 받는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배우로서 쓸쓸한 노릇 아닌가, 라고 굳이 염려해줄 필요는 없다. ‘배우 휴 그랜트’의 소명을 누구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은 휴 그랜트 본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명사보다 재미있는 인터뷰를 남기면서도 의미심장한 인물로 여겨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연기 경력 20년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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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둘. 세속적 이기주의자나태한 휴 그랜트가 시종일관 성실하게 멀리하는 가치가 있다면 ‘심오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연기의 열병에 감염되셨나요?” <피츠프레스>의 인터뷰어가 던진 진지한 질문에 그는 그런 병력은 없다고 대답했다. “학교 때는 여학교 학생들과 무대에 같이 오르고 남들이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이 기뻐서 연기를 했다. 나는 온갖 올바르지 못한 동기로, 돈과 명성과 얄팍한 재미 때문에 이 직업을 좋아한다.” 여러 미녀들과 스페인의 섬에서 몇주를 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영화를 고른 적도 있는 휴 그랜트는 <어바웃 어 보이>의 귀족급 백수 윌과 세계관을 같이하는 남자다. 성가신 파파라치는 혐오하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왕자’니 ‘가장 섹시한 수입품’이니 하는 언론이 붙여준 타이틀과 트로피에 대해서는 진지한 연기자 이미지를 해치건 말건 환영이다. 상이라면 밥상이건 뭐건 받는 편이 낫다는 주의. ‘깊이에의 강요’를 얼마나 싫어하냐면, 만의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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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넷. ‘내추럴’형의 유혹자로버트 그린이 쓴 <유혹의 기술>의 분류를 응용하자면, 휴 그랜트는 ‘내추럴’형의 유혹자다. ‘내추럴’은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하며 자신의 행위가 야기할 파장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며 스스로의 결함과 약점을 최대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자. <네번의 결혼식…> 오디션장에서 “배우는 성인의 직업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는 휴 그랜트의 가슴에는 듬뿍 사랑받고 자란 소년이 들어앉아 있다. 좋은 머리와 귀여운 외모로 얻는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서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키는 소년. 1994년 매춘 스캔들이 솔직한 사과 한마디로 대중에게 쉽게 용서된 것도 돈많은 스타의 추태가 아니라 사춘기 남학생의 철없는 탈선으로 비쳐진 덕택이 컸다.“어머니는 나와 형에게 애정을 퍼부었다. 넉넉히 사랑받으면 사랑을 공기처럼 당연시하게 된다. 문을 열고 나아가 사랑을 찾아 헤매고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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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멜로로 귀환한 ’소나기’ 동화가분명 예외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떤 계기로 성공을 하고나면,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사람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행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만약 그 사람이 오랜 기간의 ‘공백기’를 거쳤거나, 지극히 입지전적인 인물일 경우, 그 행사에 동석하지 못해 조급해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반가움과 궁금함의 표시일 것이다. 하지만 뒤늦은 관심과 호기심으로 도배된 칭송은 여전히 현재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의 자기 판단과는 달리, 그 과거 궤적들을 추억의 앨범 속에서만 찾아내도록 유도하거나 구태여 묻어놓도록 강요하는 무례함으로 전도되기도 한다.곽재용 감독은 8년간의 공백을 깨고 <엽기적인 그녀>로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거대 흥행작을 추가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엽기적인 그녀>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러니까 ‘곽재용이 돌아왔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그때, 반가움의 표시이건 무례함의 호기심이건 ‘감독 곽재용’에
`흥행감독` 타이틀 얻은 곽재용 감독의 어제와 오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