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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박광수 감독의 신작 <방아쇠>의 제작발표회가 서울 대학로의 한 라이브극장에서 있었다. 99년 개봉한 <이재수의 난> 이후 3년만이다. 그러나 박감독은 “그동안 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긴 그사이 단편을 2편이나 찍었고 <방아쇠>의 시나리오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아마도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었던 건, 당시만 해도 최대의 제작비와 제작인원이 투입되었다던 대작 <이재수의 난>이 흥행에서 참패했던 기억 때문일 게다. 충무로에서 뒷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 감독을 두고 “다시 영화찍기 쉽지 않을 것”이란 말까지 했다.사실 한두편 성공으로 중견감독이 되고, 한 편 실패로 쉽게 ‘아웃’시켜버리는 한국영화계의 풍토에서 감독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감독은 대작영화, 비디오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개척해나가는 일본영화계를 부러워하며 “한국에서 감독들은 작품 한편의 성공여부에
한국에서 감독하기, 흥행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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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시기 전에 일단 앞에 실린 김소희님의 글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글을 건너뛰신 분들은 이 글도 건너뛰시리라 예상합니다만.)
당신이 영화에 순정을 바친 영화제 열혈 관객의 한분이시라면, 아마도 영화제가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처럼, 영화제 내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일과 마찬가지로, 영화제를 치르는 일 또한 끊임없이 진정성을 위협하는 이런저런 ‘세속’의 힘들과 부딪쳐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진정성 순도 100%의 영화제가 존재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계산과 타협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제 또한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영화제를 지탱하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오고, 관객이 영화제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진정성과 만나는 것, 그럼으로써 영화에 바친 그들의 순정이 헛된 꿈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이 글은 그러한 관객인 당신에게 드리는 작은
김홍준의 세계영화제 방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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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5월15∼26일. 프랑스 칸. www.festival-cannes.org
사실, 칸영화제라는 우산 밑에서는 세개 또는 네개의 영화제가 동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보아야 함. 우선 흔히 ‘경쟁부문’이라고 불리는 ‘공식상영’(official selection)이 있는데, 붉은 카펫 위의 스타들, 그리고 턱시도를 입은 기자와 관객으로 이루어지는 칸의 스펙터클은 여기에서 비롯됨. 여기까지가 지극히 귀족적이고 오만한 칸의 이미지를 대변함. 한편으로 이러한 스펙터클과는 무관하게 수수한 ‘주목할 만한 시선’이 공식 ‘비경쟁’ 부문으로 존재하고, 주최는 다르지만 칸영화제의 부문으로 공인받은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이 독자적으로 소박하게 운영되고 있음. 어쨌든 칸을 유별나게 만드는 것은 독특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이런 복잡한 구성과 함께, 영화제 동안 동시에 열리는 대규모 영화 견본시, 마켓의 존재임. 물가 비싸고, 표
김홍준의 세계영화제 방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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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9월27일∼10월3일. 미국 뉴욕. www.filmlinc.com/nyff/nyffb.htm
뉴욕영화제는 링컨센터 ‘씨네클럽’(the 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의 자체 상영회라는 성격을 출발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 이 클럽은 시네마테크 형태로 연중 내내 고전영화와 예술영화 위주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뉴욕영화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연례 행사인 셈. 국가적인, 혹은 지방정부 차원의 떠들썩한 지원 없이도 뉴욕영화제가 높은 위상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바로 뉴욕이라는 도시의 프리미엄 탓임. 뉴욕의 관객이 평가하고, 뉴욕의 미디어에 평이 실리고, 뉴욕의 배급업자와 극장주들이 영화를 보러 오기 때문임. 그리고 그 결과가 결국 미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임. 그래서 누벨바그도, 뉴저먼 시네마도, 중국의 제5세대도, 이란영화도, 최근에는 한국영화도, 뉴욕영화제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소개되
김홍준의 세계영화제 방문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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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가장 많이 가본 사람은? 단연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일 것이다. 1988년부터 92년까지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할 때 한국영화를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국제영화제에 다니기 시작해, 9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뒤부터는 1년에 2∼4개월을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보낸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가는 영화제만 1년에 4∼6개에 이른다. 매년 초청장이 오는 영화제가 30여곳. 다 가지는 못하고 비행기 값을 대주는(보통 한 국제영화제가 다른 국제영화제 관계자를 초청할 때는 비행기 삯은 빼고 숙박비만 제공한다) 곳만 다녔다.
올해는 유달리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제도 많고, 스스로 가보고 싶은 영화제도 있어서 13곳의 영화제를 다녀왔다. 처음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다른 영화제쪽의 대접이 그저 그랬지만, 이제는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져 올해 베니스영화제 같으면 모든 영화를 보고 기자회견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배지를 받았다. 또 영화제에서 잡아주는
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이 회상하는 영화제에서 생긴 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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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상부상조
재정기반이 안 좋아도, 영화제가 좋으면 사람이 몰리고 돕는 이가 생긴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는 세계의 다른 국제영화제들이 십시일반하고 있다. 몇년 전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갔다. 재정사정이 안 좋은 탓에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싼 비행기표를 보내와서 가는 데 30시간 걸렸다. 영화제 가서도 심사 대상영화가 20편이라며 아침 먹고나면 영화보고, 점심먹고 영화보고 하루 세편씩 일주일 내내 보다가 왔다. 그래도 영화들이 좋고, 영화 조감독들이 직접 자원봉사자로 나서 게스트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 영화제는 올해 재정사정으로 열리지 못할 뻔했으나 베를린과 로테르담영화제가 지원을 해줘 지난 4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 영화제가, 경제난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남미 독립영화의 열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제들도 이 영화제에 초청돼 갈 때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부산국제영화제)도 올해 한상준 (전)프
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이 회상하는 영화제에서 생긴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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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국 배우 기네스 팰트로의 부친이자 유명 감독인 브루스 팰트로가 3일 폐렴 합병증과 인후암 재발로 사망했다. 향년 58세.
기네스 팰트로의 대변인인 스티븐 허베인은 암으로 투병 중인 브루스가 기네스의 30세 생일을 기념해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로마에서 급사했다고 밝혔다. 뉴욕 브룩클린 태생의 브루스는 1970년 영화배우 블라이더 대너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으며, 1980-90년대에 영화 <어 리틀 섹스(1982)>와 더불어 TV시리즈 <홈파이어스(1992)> 등을 제작해 감독 및 프로듀서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로마 =연합뉴스)
기네스 팰트로, 부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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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리는 제15회 도쿄국제영화제의 아시아의 바람(Winds of Asia) 부문 폐막작으로 초청됐다.
이 부문 개막작으로는 한국(김지운)ㆍ홍콩(천커신)ㆍ태국(논지 니미부트르)의 합작영화 <쓰리>가 선정됐고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변영주 감독의 <밀애>도 초청작 목록에 올랐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서울=연합뉴스)
<복수는 나의 것> 도쿄영화제에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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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MCA야구단>때는 일본의 식민통치가 기정사실로 굳어져가던 1905년, 암행어사가 꿈이었던 서당 훈장의 둘째아들 호창은 과거가 폐지되자 하릴없는 청춘을 보내다 야구를 하는 미국 선교사들을 보게 된다. 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민정림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호창은 조선 최초의 야구팀 YMCA야구단의 4번타자가 되고 YMCA야구단은 승승장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군대가 야구 운동장을 점령하고 YMCA야구단은 일본 군대의 야구팀인 성남구락부와 시합을 갖게 된다. 김현석 감독, 송강호, 김혜수, 김주혁, 신구 출연,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상영시간 104분김봉석 농담은 안타, 드라마는 삼진 ★★★☆박평식 북한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심영섭 스트라이크 하나, 볼 셋 ★★☆홍성남 전체적으로 선전했지만 고비고비 적시타가 아쉬운 경우 ★★★■ <트리플 X>스포츠카, 오토바이, 패러글라이딩을 비롯한 익스트림 스포츠의 달인 젠더 케이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누
YMCA 야구단/트리플 X/K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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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수년 동안 타지 않던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았을 때 머리 속에서 자전거 타기에 관한 매뉴얼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두발은 익숙하게 자전거 바퀴를 굴린다. 아마도 근육이 자전거를 기억하고 있나보다. 술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가는 건 뭘까. 공식적으로 그건 무의식의 작용이고 무의식의 소속은 머리로 분류되겠지만 자신이 돌아갈 곳을 아는 건 아무래도 가슴인 것 같다. 그렇다면, 악기를 다루는 사람에게 멜로디를 기억하는 건 뭘까. 그건 손가락이다.아코디언을 치기 시작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는데, 음악이론 공부 없이 노래책들을 집에 쌓아놓고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쳐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식한 연습도 어느 정도 쌓이니 언제부턴가 간혹 어떤 멜로디가 나오면 거기에 맞는 화성을 손가락이 찾아냈다. 머리가 교본을 읽고 화성을 학습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그 공식을 알아낸 것이다. 모든 말초신경, 중추신경이 다 뇌로 연결되거나 말거나 여하
그거 이제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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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 브래스코>를 쓰기로 맘먹고 비디오를 빌려다 틀기 시작한 순간 경악했다. 극장에서 봤을 때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극장 화장실에서 질질 짜기조차했던 나였다. 아직도 알 파치노가 죽으러 가기 직전 시계며 금붙이 따위를 서랍에 챙겨두던 모습이 선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알 파치노가 도니 브래스코인 걸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니 브래스코를 연기했던 주인공 조니 뎁은 출연했던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다(어디 가서 이 영화이야기 꺼내지 않았길 다행이지, “<도니 브래스코>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도니 역의 알 파치노 연기는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라고 나불댔다면 얼마나 개망신이었겠는가).맞다. 나는 순전히 알 파치노 때문에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것이다. 알 파치노에 대한 감동이 지나쳐 제목이 곧 그이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알 파치노야 마피아의 보스에서 길거리 생양아치까지 색색깔의 깡패 연기를 다했지만 나에게는 <도니 브래스코>에서 래
김은형의 오!컬트 <도니 브래스코>